이성과 경험의 마찰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에게는 따로 예술론이 없었지만 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Je pense, donc je suis(라틴어: cogito ergo sum)”4)라고 하는 자아에 대한 성찰은 신고전 미학에 크게 이바지했다.
본질적으로 대수학과 기하학에 기인한 그의 인식론적 방법론과 귀결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고찰에 이바지했다.
데카르트의 인식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요소들은 이성과 자연에 관한 여러 의미의 개념들에서 혼용되어 나타났다.
자연을 좇는 것과 이성의 규칙을 좇는 것이 판단력비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창조적인 예술가에게 귀감이 되었다.
데카르트로부터 추상화된 이성적·지성적인 관점이 라이프니츠, 볼프, 바움가르텐의 미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덜 추상화된 경험적·감성적 경향의 베이컨, 로크, 샤프츠베리, 흄의 미학에 대조가 되었다.
16세기에 미술품을 만들고 판단하는 데 대한 규칙은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사람들과 고전주의 작가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미학에서의 새로운 이성주의가 예술이 객관적이고, 본질적이며, 이상적인 자연의 모방이라는 그런 이론과 같은 기본 자명한 이치로부터 연역에 의해 기초가 되게 해서 그들의 규칙들을 선험적인 것으로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son(1709-84)은 1765년 『셰익스피어 서문 Preface to Shakespeare』에서 “일반 자연의 정확한 재현들이” 미술의 끝이라고 지적했고, 6년 전에는 화가를 “개별적인 것이 아닌 종species을 측정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호수아 레이놀드스 경Sir Joshua Reynolds(1723-92)은 1778년 『논문들 Discourses』에 화가는 “자연을 개요 안에서 고찰할 것을 충고하고, 자신의 모습들 하나하나에서 종의 성격들을 나타낸다”고 적었다.
이듬해 그가 발표한 『게으름뱅이 Idler』는 그로 하여금 『모던 화가들 Modern Painters』을 출간하게 했는데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의 흐름은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구성하고 … 모든 식물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의 종자들은 다양한 선들이 중심에서 종결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경향이 생기게 하는 자연을 향한 고정되거나 결정적인 형태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한 중심으로부터 다른 방향들로 흔들거리는 진자들에 비교할 만하다.
그리고 오직 하나만이 그 외의 점을 경유해서 지나갈지라도 그것들 모두가 그 중심을 가로지르듯 완전미는 종종 기형보다는 자연에 의해 생산된다.”4-1)
레이놀드스는 하나의 종one species이 다른 종에 비해 객관적으로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같은 종의 것들에서 미는 모든 다양한 형상들의 매체 또는 중심”4-2)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확실히 각 종의 중심적 혹은 평균적 형상이 자연의 목적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레이놀드스와 존슨 두 사람은 미술을 자연의 본질을 적합하게 모방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예술에 적용한 규칙들은 이성과 경험 사이에서 문제를 야기시켰다. 코네일Corneille은 1660년에 출간한 『논문들』에서 드라마의 구성에서 공간과 시간 그리고 행위의 관측되는 통일성의 요구는 인정하지만 자신은 그것들에 노예가 되지 않고 드라마의 효과 혹은 관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종종 규칙들을 깨거나 수정했다고 고백했다.
적합한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규칙을 따를 필요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일종의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회의였다.
드라마가 기능이나 종결을 가졌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규칙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 규칙들은 단지 그럴 듯하며 부분적으로는 경험에 근거해야 할 것이라는 사고가 생겼다.
이성과 경험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예술은 이성보다는 오히려 경험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음악에서 이성과 경험의 충돌은 병행되는 5도 음정들의 기피와 같은 절대적인 규칙들에서와 같이 하모니와 협화음에서 발생했다.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화음을 위한 수학적 기초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받아들일 만한 화음인지는 귀가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음악이 관객의 입장에서 판단의 대상이라는 것이며 이는 다른 예술에도 해당하는 문제였다.
이런 상반된 주장에 화해적인 이론이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1646-1716)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그는 『자연과 고상함의 원리들 Principles of Nature and of Grace』에서 모든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음조들을 그 밖의 개체들의 지각들과 더불어 미리 정해 놓은 하모니에서 매순간마다 사소한 지각들의 무한한 경향의 혼돈된 뒤범벅으로 보았다.
느낌의 형태 속에 이성이 있다고 믿은 그는 현을 듣는 데서 영혼은 무의식적으로 장단을 세며 단순할 때 협화음을 만드는 수학적 비율을 비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합리적인 사고는 한동안 이성과 경험의 문제를 잠재울 수 있었지만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커지면서 이성에 대한 반발이 다시금 거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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