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티가 주장한 재현의 정확성은


알베르티는 초상화에 반대되는 주제화로서의 역사화를 가장 고상한 종류의 그림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역사화가 가장 어려운 미술의 유형으로서 다른 분야의 숙달을 요하기 때문이며, 글로 씌어진 역사처럼 사람의 활동상을 생생히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적었다.
내가 그림을 보면서 역사책을 읽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글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붓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둘 다 화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2-2)
알베르티는 소묘가 올바르게 되었을 경우, 즉 육안으로 거의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지극히 섬세한 선들로 윤곽선을 그릴 경우 그것 하나만으로도 썩 잘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3)고 했다.
도구를 사용해서라도 기하적으로 완벽한 소묘를 할 것을 화가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화가의 임무는 선과 색채로서 주어진 패널 위나 벽 위에다 사물의 가시적인 표면을 그리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정한 위치에서 보면 그것이 부조처럼 튀어나와 마치 사물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하는” 것이라면서 회화를 철저한 자연주의에 입각한 시각으로 정의했다.
그는 심지어 단면도의 구조를 옮길 수 있는 하나의 장치까지 발명했는데, 그것은 화가와 그려질 대상 사이에 쳐 놓은 망net으로, 화가는 그 망을 통해 나타나는 대상의 윤곽선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상으로부터 눈으로 이어지는 이런 피라미드의 착안은 선원근법의 기초로서 알베르티식 망만이 선원근법에 따라 대상의 보임새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방법이다.
알베르티가 주장한 재현의 정확성은 르네상스 미술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런 점이 음악에도 적용되었다.
음악이론가들은 음악을 인본주의적 훈련으로 보고 합창에서 감성적·윤리적 효과를 강력하게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는데 가사의 의미를 강렬하게 나타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재현의 정확성은 미술이 모방이라는 점을 기꺼이 받아들인 데서 효과적인 기술에 관한 추론이다.
시에서도 이런 점이 분명했으며, 르네상스 시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았다.
시인들은 시가 인간 행위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따랐다.
하지만 모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서 시가 드라마와 같은 일관성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시인이 거짓말로 독자들을 불멸로 인도했을 때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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