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시작

  

낭만주의Romantik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된 말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 국경에 있는 로마냐Romagna의 언어, 즉 라틴어의 방언 로망스어로 씌어진 이야기라는 의미이면서 공상적 혹은 경이적이란 뜻도 내포하게 되었다.
로마냐는 로마Roma에서 온 말이므로 굳이 말하면 로마에서 파생된 말이라 하겠다.
이 낭만적romantic이란 말의 근대적 기원은 17세기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통속어로 전래된 중세의 목인소설이나 기사에 관한 이야기
예를 들면 아더 왕King Arthur이나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다고 믿어지는 성배를 찾으려 한 원탁기사의 이야기와 같은 기사도정신에 입각한 중세 모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이를 전형으로 근대에 창작된 괴담에서 고딕, 낭만류의 황당무계한 바보 같음을 야유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로망스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들이 라틴어가 아닌 낭만적 언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기사도정신에 입각한 이야기chivalric를 프랑스어로 로망romaunt이라고 하는데
전기적인 이야기란 뜻으로 이것이 로맨스romance가 되었다.
중세에 대한 매료는 취미의 변화를 나타내는 증거로 충분했다.
프랑스의 기념물 뮤지엄은 1795년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이곳에는 수집된 중세 유적들을 연대순으로 정돈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뮤지엄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들로 하여금 중세의 정신과 풍습을 되찾게 만들었다.
특히 나폴레옹 황제의 아내 조제핀이 이 뮤지엄을 좋아했다.
뮤지엄은 왕정복고하에서 폐쇄되었지만 중세의 영향은 신고딕식의 교회로 나타났으며 가구들이 대성당 양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
낭만주의Romanticism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데
소수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낭만적 운동의 일환으로 자각했기 때문에 이즘ism이란 말을 붙여서 낭만주의라고 말하지만 이 운동에 속한 예술가들에게 목적에 대한 공감할 만한 의도적 추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말처럼 낭만주의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방식"에 있었으므로 감상적 이상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잰슨은 저서 <예술의 기본역사 A Basic History of Art>에서 낭만주의가 도래한 동기로 계몽주의의 영향을 꼽으며 계몽주의는 이성을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에 반하는,
즉 감정주의의 물결이 일게 했으며 이런 물결 혹은 운동이 낭만주의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계몽주의가 이성과 감정 모두의 자유를 구가하면서 이성과 고전 규범에 근거해서는 신고전주의가 출현했고 감정과 어떤 규범에 대해서도 저항하는 정신에 근거해서는 낭만주의가 꽃을 피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서로 상반되는 미학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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