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공식 명칭이 없었으므로


박물관의 공식 명칭이 없었으므로 당시 공식 기록인 『승정원일기』나 『순종실록』에는 단순히 박물관으로만 지칭되었다.
박물관의 설립을 보도한 1908년 1월 9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제실박물관으로 적혀 있지만 이는 공식명칭이 아니라 황싱체제하에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일 뿐이었다.
제실박물관이란 명칭은 일본의 것을 차용한 것으로 일본 박물관의 경우 관리 부서가 변경될 때마다 문부성 박물관, 내무성 박물관 등으로 명칭이 바뀌다가 1889년에는 일본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뒷받침하는 기관으로서 정체성을 내세우기 위해 제국박물관으로 개칭했다.
이어 1900년에는 그 중심을 청황가로 옮겨 명칭을 제실박물관이라 했다.
일제 시기의 신문과 잡지에서는 창덕궁 박물관, 창경궁 박물관 등으로 불렀으며, 창경궁이 1911년에 창경원으로 격하된 뒤에 창경원 박물관으로 지칭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모두 박물관의 위치를 지적하여 앞에 붙인 것에 불과했다.
일제 시기에 가장 널리 불리워진 것은 이왕가 박물관이었다.
이왕가 박물관이란 명칭은 1912년에 발간된 『이왕가 박물관 소장품 사진첩』에서부터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 8월가지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제국이었지만 조선을 합병한 일본이 일본 황실 안에 조선의 왕계를 편입하여 일본 황실보다 격이 낮은 여러 왕가들 중 하나로 붙인 칭호가 이왕가였다.
한·일 합병을 알리는 일본 천황의 조서를 실은 『순종 실록』 부록의 1910년 8월 29일자 기사에 “전 한국 황제를 책봉하여 왕으로 하고 창덕궁 이왕이라 칭하니”라는 문구가 있다.
따라서 이왕가 박물관이란 명칭은 일본 통치자의 입장에서 부른 것이었다.
왕실은 일본 황실의 아래격인 왕가의 하나로 편이되었으므로 이왕가는 총독부 산하가 아니라 일본 궁내성 관할이 되었다.
그러나 이왕직이 형식상으로는 일본 궁내성 관할 하에 있었지만 이왕직 장관 등 이왕직 직원의 임명과 징계에 관한 건이 조선 총독의 관할 하에 이루어졌으므로 이왕직은 실질적으로는 총독부의 통제를 받았다.
이왕가 박물관은 궁내부 소속 신설된 어원사무국 산하에 속해 있었다.
박물관 사무책임자는 박물관부의 부장인 스에마쓰 구마히코였다.
궁내부는 본래 대한제국기에 설치된 황실사무국으로 황실뿐 아니라 여러 사업을 관장하는 거대한 기관이었지만 통감정치를 받으면서 직제가 줄어들어 왕궁의 사림과 능원 관리 등의 사무를 맡아보는 부서로 격하되었다.
『이왕가 박물관 소장품 사진첩』에 의하면 1912년 12월 현재 소장품은 12,230점으로 불상, 금속공예, 석조공예, 목조, 칠기, 자수 및 직물, 도기, 기와, 유리, 회화 등으로 분류되었다.
상·하 두 권으로 된 이 사진첩에는 총 677점의 유물이 수록되어 있는데 주요한 소장품은 고려 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류와 삼국시대 이래의 불상과 금속공예품, 조선시대 회화류였다.
수집은 구입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고미야의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08년 1월부터 먼저 진열품의 수집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이때 마침 경성에 고려시대의 분묘에서 나온 찬연한 고려 문화를 볼 수 있는 다수의 도자기, 금속품, 옥석류가 많이 매매되고 있어서, 그것을 호기로서 그러한 출토품과 함께 삼국시대, 신라통일시대의 작품과 관련있는 중요한 조상의 구입에 노력하고, 혹은 조선시대의 회화, 공예품 등도 수집했다.
개성 근처의 고려 고분을 도굴해서 나온 고려 도자가 매매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고려 도자를 수집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별다른 수집품이 없던 이왕가 박물관은 4년 동안 무려 12,000점 이상의 소장품을 구입을 통해 확보했다.
박물관 주임 스에마쓰 구마히코는 1914년 4~6월에 전남, 충남, 경북 지방을 다니며 고려 유적을 조사했으며 5월에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의 고려 도요지에서 고려시대에 폐기된 불완전한 도자기 및 파편 등의 물건을 수집했다.
세관 사무관 출신인 그는 박물관과 동·식물원의 서무 회계 및 촉탁을 겸임하여 일했고 골동 취미로 고려 도자에 관심이 많았다.
박물관을 포함하여 창경원은 1926년까지는 매주 목요일에 순종의 산책 겸 관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휴관했다.
그러나 창경원에는 이미 벚나무를 수백 그루 심어 해마다 봄이면 벚꽃놀이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1924년부터는 야간에도 개장했다.
1926년 4월에 순종이 서거하자 이듬해 7월 1일부터 창경원 전체를 연말연시 6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개방했다.
이왕가 박물관은 1938년에 덕수궁으로 이전했다.
박물관 소장품은 석조전의 서쪽에 새로 지은 신관에 전시되었다.
덕수궁의 석조전에는 1933년부터 일본 근대 미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덕수궁은 여러 전각들이 훼철되고 변형되어 1933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었고, 이 때 덕수궁에서 가장 큰 양식 건물인 석조전을 개조하여 미술 전시를 시작했으며 여기에 전시된 것이 일본 근대 미술품이었다.
이왕가 박물관이 덕수궁으로 옮겨지면서 두 전시관이 합쳐져 이왕가 미술관이 되었다.
이왕가 미술관은 해방 뒤 덕수궁 미술관으로 유지되다가 1969년에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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