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를 좀 더 진전시킨 조지 산타야나
미술품을 평가하는 방법 가운데 쾌락주의Hedonism란 것이 있는데 이는 감상자의 즐거움·만족 혹은 취미에 따른 평가를 말한다.
이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심리적 요소들에 근거하는데 고대 그리스인은 장님이 아름다운 그림을 즐길 수 없고 귀머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수 없듯 아름다운 것은 시각과 청각, 즉 고도한 감각을 즐겁게 해준다고 믿었다.
쾌락주의를 쾌이론Pleasure theory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자연주의와 철학을 기반으로 구성된 이 이론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즐거움에 긍정적 가치를 두고 고통이나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하는 미술품들에는 부정적 가치를 매긴다.
쾌락주의를 좀 더 진전시킨 것이 시인이며, 평론가이고, 철학자이면서 에세이 작가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1863-1952)의 이설인데 자연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스페인계 아메리칸인 그는 1896년에 『미의 지각 The Sense of Beauty』을 발간했는데 미의 재료, 형태, 표현을 다룬 이제는 고전이 되었다.
그는 말했다.46-4)
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가정된 무관심이 그것의 또 다른 성격이 되는 것을 종종 본질적인 것 - 그것의 보편성 - 으로 간주되었다.
감각들의 쾌에는 내게 쾌를 주는 어떤 것에라도 다른 이에게 쾌를 주는 그것의 능력에 관한 주장이 없다는 독단주의가 없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나의 판단은 그것이 그 자체 아름답거나 혹은 (같은 말이지만 더욱 비판적으로 표현해서) 그것이 반드시 모든 이에게 아름다울 것임을 의미한다.
이 주의에 의하면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 미학의 본질로서 미적 지각을 만드는 것은 감각이기보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모든 미적 지침들은 불가능할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판단에서 역설적인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변덕스럽고 주관적인 모든 비평주의의 철학적 함축들을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시킬 것이다.
산타야나는 미에 대한 보편성의 주장을 당연히 부정확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미적 문제들에 관해 우리에게는 동의된 바기 없기 때문이다.
산타야나는 미를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서 궁극적으로 지각하게 만드는 독자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미는 하나의 가치로서 그것은 실제 사물이나 관계에 대한 지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한 그리고 감식력 있는 본능의 감성과 애정이다.
하나의 오브제가 어느 누구에게도 쾌를 제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고 했다.
산타야나는 미는 지각 안에서 존재하지만 달리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지각되지 않은 미는 느끼지 않은 쾌로서 모순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미는 미술품의 특징으로서 감성적인 요소이며 쾌였다.
그는 미술품들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쾌를 오브제의 지각으로부터 쉽게 구분하고 나눌 수 있다고 보고 “오브제는 반드시 미각이나 삼킨 포도주처럼 혹은 쾌가 생기기 전 사용되고 작동된 특정한 장기organ에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응집력은 쾌와 다른 지각의 요소들 사이에 근소하다;
쾌는 지각으로부터 시간 안에서 나뉘어지거나 다른 장기에 집중하며, 결과적으로 단번에 오브제의 특성이 아니라 효과로 알게 된다”고 또한 『미의 지각』에 적었다.
미의 재료에 관한 산타야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심미적 미Sensuous beauty는 가장 위대하거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더라도 가장 원시적이며,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객관적이다.
… 취미가 자연발생적일 때 취미는 늘 지각들로 시작된다.
정직성을 상실하고 속물적인 야망이 대치될 때 나쁜 취미가 생긴다.
그것의 본질은 미적 가치들에 대한 비미적 대치이다.
그는 순수지각에서 미의 재료를 파악하는 것을 거의 사람의 본능으로 보았다.
그의 이론은 예술을 인본주의로 정초하는 것이며, 크로체Benedetto Croce(1866-1952)가 분명하게 거부했던 주장 속에 제시된 환경의 맥락 속으로 예술을 편입시키는 데 있었다.
산타야나는 각 요소가 가치를 지니지 않거나 조금 지닌 그런 혼용된 요소들로부터 미적 즐거움이 생길 때 미적 형태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면 트라이앵글은 각기의 선들이 죽었을 때 관심거리가 되며, 음악의 화음은 각기의 음이 구별된 그 이상으로 만족을 줄 수 있다.
그는 두 종류의 형태에 관해 언급했는데 디자인과 패턴이었다.
디자인의 기능은 단조로움monotony 혹은 미적 피로aesthetic fatigue를 피하는데 이러는 가운데 대비, 테마, 변화의 미적 원리들이나 규칙들이 생긴다.
테마와 변화는 단조로움을 피할 때 더욱 효과적이며 음악에서 이런 경우를 흔히 보는데 흥미로운 테마나 모티프는 리듬이나 한 소절의 변화와 더불어 반복된다.
이런 변화와 함께 테미는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가운데 수없이 반복될 수 있다.
대비와 테마 그리고 변화는 상호 협력할 수 있으며 음악에서 세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패턴의 구성적 기능은 단조로움을 피하는 디자인의 기능과 같이 혼란을 피한다.
산타야나는 미의 재료들과 형태 외에도 상징에서의 표현을 중요하게 간주했는데 상징은 의미를 나타내는 미적 요소였다.
모든 언어가 상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학이야말로 표현예술의 극치를 이룬다.
미술에서도 의미는 매우 중요하고 종교화의 경우 의미가 감성의 미학으로 깊게 스며들게 하며 비극의 경우 매우 효과적으로 나타나며 카타르시스가 이를 말해준다.
문학은 정녕 쾌락주의의 또 다른 형식인 것이다.
쾌락주의보다는 덜 통속적인 감응적sympathetic으로 미술품을 평가하는 방법이 있다.
매력적이고 기쁘게 하며 즐거움과 감탄을 일으키는 것들에 감응하는 것이다.
크로체는 감응적인 것을 즐거움을 주는 이미지 혹은 재현 그 이상이 아니라면서47) 쾌락주의와 감응미학 모두에 반대했다.
그에게 예술의 특징은 표현이었다.
예술을 표현으로 정의하는 것은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그 징후를 찾아보기 힘들다.
파트리치F. Patrizi(1529-97)가 『시론 Della Poetica』(1586)에서 표현이 시인의 관심거리가 아님을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표현을 예술의 정의로 사용한 사람들은 크로체와 그의 추종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