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람자는 기술에 탄복하지 않고 의도에 탄복한다 |
예술은 감관의 감각을 규칙으로 삼는 기술이라는 것이 칸트의 정의이다.
예술이 규칙 내에서의 기술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약 2150년 동안
예술의 정의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어떤 생산물이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규칙을 기초로 기술에 의해 가능하게 표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칙은 이차적인 구성요소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곡을 한 군데도 틀림없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연주를 듣게 되면 탄복하게 된다.
하지만 연주자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창작 의도를 전하지 못하고 단지 기교로서 악보상의 규칙을 지켰다면 우리의 탄복은 그 사람의 기술에 대한 탄복이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작품에 대한 탄복도 아니고 작품에 대한 연주자의 해석에 대한 탄복도 아니다.
그저 놀라움일 뿐일 것이다.
좀더 부언해서 예를 든다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자동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서 운전하는 기술을 반드시 익혀야 만한다.
그러나 일단 기술을 익힌 후에는 그 기술이 안전운전을 보장한다 해도 운전자는 기술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기술을 의식하지 않고 다만 올바른 동기로 목적지를 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그곳으로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관람자들은 그 사람의 운전기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슨 동기로 어디를 어떻게 갔느냐 하는 데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규칙 이전에 의도가 나타나야만 하는데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규칙이 눈앞에 아른거려 (예술가의) 심의력을 속박했다는 흔적을 보이는 일이 없이 그것이 자연인 것처럼 보이는 한에 있어 예술이다."
미술품에 대한 이런 정의는 불변하는 것인양 서양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철학자와 미학자들이 자연미를 운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