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블런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에서
우첼로는 애쓰고 공을 들인 정도가 지나치다고 해서 가장 심하게 비난받은 화가인데, 특히 원근법에 대한 그의 강한 집착은 바로 그의 판단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바자리는 간주했다.
그러므로 화가는 “눈에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우미와 숙련됨을 추구해야 만한다.”
그런데 이 숙련됨은 우미만을 산출할 뿐만 아니라 대담성같은 다른 잇점을 따라붙게 한다.
“많은 화가들은 … 초벌그림에서는 마치 영감이라는 불길에 휩싸인 듯이 그들 작품에 무엇인가 아름답고 다소 대담한 것을 구현시키거나 끝마칠 때는 어느덧 대담성은 사라지게 되고 만다”60-7)고 바자리는 대담성에 관해 언급했다.
이는 지나친 노력과 긴장으로 해서 영감의 효과가 소실되어 버림을 지적한 것이다.
우첼로의 경우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천재의 정신은 지성이 활동하기를 원할 때만 그리고 영감의 불꽃이 불붙을 때만 행동을 개시하는 데, 이때에야 비로소 우수하고 신적인 자질과 놀랄 만한 관념의 세계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60-8)
안소니 블런트Anthony Blunt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에서 바자리가 우미론을 회화와 연결시켜 정밀히 연구한 최초의 저술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미론 자체를 창안해 낸 것은 아님을 지적했다.
그는 바자리가 단순히 태도에 관해 글을 쓴 저술가들, 특히 카스틸리오네와 같은 인물이 들어 있는 네오플라톤 학파 사람들이 발전시킨 인간행위에 필요한 한 요소로서의 우미라는 개념을 미술에 적용시켰을 뿐으로 보았다.
블런트는 카스틸리오네가 『궁정인』에서 피력한 사회적 의미로서의 우미에 대한 설명이 바자리가 미술에 적용시킨 우미의 개념과 너무 흡사해서 바자리가 이 개념을 『궁정인』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바자리에 의해서 우미는 교훈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실질적인 ‘속성들’과 ‘조건들’에 덧붙게 되는 특별한 성질로 규명된다.
반면 우미는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선물이며, 좋은 판단을 가짐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잡으려고 지나치게 애를 쓴다든가 행동에서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면 우미는 사라져 버린다.
완벽한 편안함만이 우미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우미를 얻기 위한 유일한 노력으로는 우미 아래 깔린 숙련된 솜씨를 감추기 위한 노력이 고작 있을 뿐이다.
블런트는 우미가 자연스러움sprezzatura(혹은 recklessness)에서 발생한다면서 이는 바자리가 회화 분야에서 우미를 얻기 위한 원리로 규정한 바와 같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