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리의 우미의 개념을 가장 정확하게
1400년대의 예술가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바자리는 “그들에게는 비례의 문제에서, 인물상을 정확히 재보지 않고서도 측정을 통해 나오는 미를 능가하며 그 크기에 맞는 우아함을 산출할 수 있는 어떤 판단의 정확함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조각에 관한 서문에서 “눈에 의한 판단보다도 더 좋은 판단은 없다.
그 무엇이 아무리 정확하게 측정되어 묘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눈에 거슬린다면 계속해서 혹평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입장을 좀 더 분명히 했다.
최종적으로 눈에 의존하는 태도는 피렌체 매너리즘 회화와 바자리의 견해를 특징적으로 말해준다.
피렌체의 매너리스트들과 바자리에 의해서 미술의 지적인 면과 감정적 면이 한층 떨어졌다.
레오나르도와 같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인간 행위와 감정에 대한 묘사에 관심을 둔 반면 매너리스트들과 바자리와 같은 이론가는 회화세계에서 인물의 누드를 묘사하는 데 주로 역점을 두었다.
미켈란젤로 또한 나상의 인체를 화가가 연구해야 할 최우선적 대상으로 여겼지만 앞서 본 대로 그는 나상을 정신적이고 신적인 미의 반영으로 보았으며, 더욱이 말년에 가서는 주로 강렬한 비극적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블런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에서 바자리의 이론의 핵심을 ‘우미 la grazia’로 보았다.
우미란 말은 바자리 시대 이전에는 기껏해야 정도 차이로서만 미와는 구별될 뿐 막연하게 미라는 단어와 바꿔써도 상관이 없는 듯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 회화에 사용되었다.60-5)
바자리에 와서 우미는 매우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으며, 미와는 확연히 구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와는 대조가 되는 의미를 지니게도 되었다.
『미술가 열전』에서 확실한 정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눈에 띠는 구절을 살펴보면 미는 규칙에 의존하는 합리적인 성질인 반면 우미는 판단에 의존하는, 따라서 결과적으로 눈에 의존하는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성질이었다.
바자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우미였지 미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그는 “완전한 예술이라면 섬세함, 세련됨, 최고의 우아함과 같은 특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약 이런 특징들이 인체묘사에 결여되었다면 “사지 전체가 고대 규범에 맞아떨어지며 비례를 통한 정확한 조화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정확함이 우미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미를 감미로움 또는 부드러움이란 개념과 연관해서 생각했다.
바자리의 우미의 개념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숙련이란 개념과 관련지울 때이다.
빨리, 그리고 쉽게 그린다는 개념은 1400년대 화가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생각이었을 뿐더러 그 시대의 이론가들도 절대 권하지 않던 일이다.
하지만 매너리스트들은 벽면을 채우는 데 최고의 빠른 기록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을 대단한 자만심으로 여겼다.
바자리는 자서전에서 자기는 매우 빨리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쉽게 그리고, 거의 애쓰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다고 뽐낸 구절이 있는데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던 듯 로마에 있는 팔라조 델라 칸첼레리아의 큰 방을 그가 100일만에 프레스코화로 채운 사실이 그의 말을 입증했다.
화가가 제작과정에서 수고한 흔적이라던가 애쓰고 땀을 흘린 흔적이 있으면 그것이 그림에서 우미를 없앨 뿐만 아니라, 바자리의 판단에 따른 표현에 의하면 무미건조함이란 치명적인 성격을 그림에 갖다 준다.
그는 1400년대 전체를 무미건조하다고 규정하며 비난했다.
바자리는 그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공들여서 했다는 증거”를 보여 주고자 했지만 “작품의 완성을 위한 그런 식의 노력은 화법에 무미건조함을 가져다 준다”60-6)고 했다.
그리고 화가들은 레오나르도 이후에야 비로소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그 동류의 화가들의 지나친 연구가 미술에 남겨 준 화법상의 무미건조함, 딱딱함, 정확성이 없어짐으로써 나온 이 완벽한 우미”를 작품 안에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