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긴 동기를 물은 분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뉴욕에 정찬승 형이 있었습니다.
형의 작업실은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 예술가들이 시도때도 없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고, 뉴욕을 방문하는 한국인 미술 관련자들뿐 아니라 그 외의 예술가들 조영남, 양희은 등등도 으례 형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형은 대마초와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성격이 예술가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형은 사람들에게 날 소개할 때면 철학자라고 했습니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형과 친구 화가들 때문이었습니다.
1970년이었던가 제1회 대학생 사진 컨테스트에서 입상한 적이 있어 나도 조금은 미술에 관심을 가져왔던 터였고, 1972년 1월 뉴욕으로 가서 공부를 시작할 때도 뉴욕 사진학교에 먼저 입학한 걸로 봐도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적으나마 있었던 것으로 회상됩니다.

약 일 년 동안 회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용감하게 혼자 열심히 그렸는데 숟가락과 헤어드라이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물감을 진하게 탔을 때 혹은 연하게 탔을 때 그리고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약하게 혹은 강하게 할 때 캔버스에 생기는 물감의 형태는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공립도서관에 작품을 보여주고 개인전도 가져봤는데 뉴욕에서는 도서관이 전시장으로 곧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뉴욕시가 매년 주최하는 Washington Square Outdoor Show가 있는데 2차세계대전 이후에 생긴 전시회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전시회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폴록이 미술학교에 재학할 때 이 Show에 출품한 적이 있었습니다.
뉴욕시에 슬라이드를 보내 전시회에 참가를 허락받았습니다.
사흘 동안 계속되는 전시회였는데 첫날 내 그림을 반가운 얼굴로 보던 미국인 청년 하나가 돌아서더니 "야, 여기에 잭슨 폴록이 있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등 뒤의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난 그 청년의 말에 얼마나 놀랐던지 ...
그때만 해도 잭슨 폴록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난 기분이 몹시 나빠 그림들을 포장하고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이후 폴록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미술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쓴 것이 <폴록과 친구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잭슨 폴록을 모르면 미국 회화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매우 중요한 화가입니다.
해프닝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앨런 캐프로우가 해프닝의 출발을 폴록의 action painting에서 왔다고 말한 것만 봐도 폴록의 영향이 회화뿐 아니라 해프닝과 그 밖의 장르에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뉴욕의 미술을 쉽게 훤히 알 수 있는 길은 폴록, 앤디 워홀 그리고 마르셀 뒤샹 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이어 쓴 것이 <워홀과 친구들>과 <뒤샹과 친구들>입니다.
내 그림이 폴록의 것을 닮았다고 소리친 청년 덕분에 일치감치 화가의 길을 접고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청년이 내게 인생의 새로운 통로를 개설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만약 그 청년을 다시 만난다면 여기에 적은 글의 내용을 말해 주고 기꺼이 술 한 잔 사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청년에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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