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미학은 한 마디로 이상주의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오게 해서 자신을 위해 거대한 무덤을 제작할 것을 의뢰했는데 이는 40개 이상의 실제 사람 크기 조각들이 장식되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율리우스가 1513년에 사망하고 재정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그리고 그 밖의 이유로 해서 무덤은 완성되지 못했는데 미켈란젤로는 이를 한동안 비극으로 여기고 몹시 부끄러워했다.

한편 율리우스는 1508년 그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을 그림으로 장식할 것을 의뢰했는데 그는 조각이 아니라 그림으로 의뢰받은 일에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율리우스가 사망하고 그의 후계자가 율리우스의 무덤에 관해 미켈란젤로와 다시 협상하는 가운데 그로 하여금 <모세 Moses>와 두 점의 <노예들 Slaves>을 제작하게 했다.
메디치 가문이 1512년에 다시 피렌체에 집권하게 되자 미켈란젤로는 1514년부터 1534년까지 피렌체에 거주했으며, 그 후부터 사망한 1564년까지 로마에 거주했는데 메디치 가문의 무덤 장식을 막 마친 후였다.
메디치 가문의 두 교황, 레오 10세Leo X(로렌초의 둘째 아들로 1513년에 교황에 선출되었다)와 클레멘트 7세가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자신들이 의뢰한 작업에 전념하게 했으므로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후계자와의 계약을 곧 실행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1518년 메디치 가문이 후원하는 성 로렌초 성당 외관을 위한 모델을 디자인했으며, 1520년 성 로렌초 성당 내의 영안실 예배당에 메디치 가문을 위한 무덤을 만들기로 계약했다.

미켈란젤로의 미학은 한 마디로 이상주의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만만했는데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천 년 후 누구도 그것들이 그렇다는 것 외에 달리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쏜 화실과도 같은 시간의 흐름을 대리석으로 비스듬히 기댄 누드로 의인화하여 묘사했는데 그것들이 <새벽 Dawn>·<낮 Day>·<황혼 Dusk(혹은 Twilight)>·<밤 Night>이다.
그는 <낮>과 <밤>을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의 무덤에 장식했으며, <새벽>과 <황혼>을 로렌초 데 메디치의 무덤에 장식했다.
<밤>의 경우 그는 자신이 정녕 만든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이미 내재한 형상을 자유롭게 했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고매한 정신에 내재한 추상적 형상을 질료로 탁월하게 구현시킬 줄 알았고 관람자들로 하여금 플라톤이 말한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두 무덤은 모두 성 로렌초 성당의 메디치 영안실 예배당 내에 있다.
네 점의 조각은 인간을 구속하는 자연의 영역인 시간을 육체에 종속된 인간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억누르는 지상에서의 실질적인 고통의 상태를 상징한 것들이다.
로드비코가 1531년에 죽었을 때 미켈란젤로가 아버지의 사망에 관해 쓴 애정 어린 찬양의 시에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잘못된 까닭으로 하늘에 있는 영혼들은 해방되었고, 근심과 압박들로부터 자유로우며, 부러울 정도로 고충들로부터 면제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영혼의 불멸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