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미술 평론가가 되느냐고 묻길레..
여러 날 전 홍대 앞 아지오에서 어느 여자분이 어떻게 해야 미술평론가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해야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미술비평에 관한 글입니다.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는 1964년 미술사나 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미술비평을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그들이 학문이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적 만족을 위해서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술비평사 History of Art Criticism>에서 미술사, 미학, 미술비평 이 세 분야가 상호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투리는 비평가가 자신의 감정에만 복종한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는 미술비평가는 미술품의 효과적 구성에 작용하는 모든 요소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을 인용했다.
미적 비평이 역사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해도 누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시하게 된다.
미술비평가가 고려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예술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나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지리적, 기후적, 인종적 조건인가?
그의 역사적 계기를 이루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인가?
그의 사생활인가?
그의 병리학적이고 생리학적 체질인가?
그가 다른 예술가들과 갖고 있는 관계인가?
그의 종교관인가, 도덕관인가?
이들 범주 가운데 어느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들 모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들 모든 범주가 절대로 필요할 수도 있고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렇게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평가가 현재 꼭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사실의 요소들은 바로 그가 조사하고 있는 미술품의 효과적 구성에 참여하는 제 요소이고, 그가 자신에게 제시한 비평 문제의 해결에 절대 필요한 요소들일 뿐이다.
이들 요소들이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는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된 문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결되는 것이다.
벤투리는 크로체의 말을 인용해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동일성을 확증한 후 미술비평과 미학 사이에도 동일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칸트는 미적 판단이 아무리 보편타당성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미적 판단은 우리가 논리적 판단을 논증하듯 논증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벤투리는 미술품이 직관의 대상이 될 때만 미적 판단을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판단이 보편적 이념과 개인적 직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직관이란 단순하지 않으며 역사적 제 요소라고 하는 미술품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그 자체 내에 함유하고 있으며 이들 요소들의 체계화란 불가능하다.
벤투리는 말했다.
미술적 직관들을 아는 것이 미술사이다.
하지만 역사적 요소들의 인식이 직관에 참여할 경우 과연 무엇이 참여하게 되는가?
그것은 미술사는 아닌 것이다.
그들 제 요소들을 검토하면서 누구나 직관으로부터 추출하기 때문이다.
미학사도 아니다.
이들 제 요소들 가운데는 미적 요인과는 상이한 실질적이며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벤투리는 미적 원리를 안다는 것을 미적 원리를 자기 개인의 체험으로 입증해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비평하는 것으로 보았다.
역사적 경험은 가정된 미적 원리에 의해 해명되며 변형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미적 원리를 유일한 방법으로 미학사를 통해 미적 원리 안에서 이론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을 꼽았다.
미술비평이 아니면 미술을 이해할 다른 방법이 없음을 그가 역설한 것이다.
벤투리에게 미술비평이란 미학과 미술, 미술의 이념과 미술적 직관과의 관계였다.
그에 의해서 미술비평사라는 학문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