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동기가 미켈란젤로에게
르네상스Renaissance(1300~1600)는 이탈리아어 리나쉬타Rinascita의 번역인데 재탄생rebirth 혹은 새로운 탄생의 뜻으로 미술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로의 약진을 특징지운 말로 생겼다.
역사가 조바니 파피니Giovanni Papini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동기가 미켈란젤로에게 있다면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무덤(1505-1545)을 호화스럽게 장식하게 하려고 면죄부의 판매를 지나치게 늘렸기 때문에 루터와 그 밖의 사람들이 교회를 둘로 분리했다고 적었다.
미켈란젤로는 바로크의 아버지로도 불리는데 그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2)에 나타난 비틀리고 긴장한 사람들을 모습들에서 바로크를 예고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바로크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것은 미술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에게는 엄청난 영예이다.
플라톤이 말한 형상들의 순수이성의 의식에 몰입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가 그중 한 사람이다.
프란체스코 베르니Francesco Berni는 적었다.
나는 그의 몇 작품을 본적이 있지만,
배운 바는 없더라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그것들 전부를 읽었다는 점이다.59)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카프레세Caprese로 불리운 아레조Arezzo 근처 작은 언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그곳의 공식명칭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 로도비코Lodovico는 시장이었다.
미켈란젤로는 13살 때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기본 미술 the prime art”이라고 한 조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피렌체의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메디치 정원에서 베르톨도 디 조바니Bertoldo di Giovanni 문하에서 조각을 수학했다.
로렌초는 고대 조각품들을 수집해서 자신의 정원을 장식했는데 그곳은 예술가 지망생들의 캠퍼스와도 같았다.
메디치의 후원이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메디치의 후원 하에 있는 피치노와 시인 폴리티안Politian을 알게 했으며, 그들로부터 받은 사상적 영향을 자신의 미술과 시에 반영하게 했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의 사람 Medici man”이 되었는데 이는 자신의 운명을 메디치의 정치적 위상과 변화에 맡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