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는 시간과 공간의 내밀한 연관성



루카치는 인간의 감각적·인간적 주변 세계를 도식화하고 그럼으로써 경직되게 하는 일상생활에 침투된 물신화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키는 사고를 꼽았다.
그는 공간과 시간의 물신적·형이상학적 분리가 무엇보다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제기된 ‘선험적 미학’ 이래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능가할 만큼 그런 분리를 물신화시켰지만 헤겔의 철학은 늘 정열적으로 그런 경향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면서 “헤겔 철학의 입장에서 특징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 전체가 보편적인 인식론상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고 - 칸트의 경우에는 그것이 인식론의 도입부로 남아 있다 - 자연철학의 보편적 일부분을 이룬다”21)고 했다.
그는 헤겔의 『대백과 Enzyklopadie』의 말을 인용22)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불가분의 연관성이 변증법적임을 지적했다.
그는 헤겔이 “공간의 과학, 즉 기하학에 대해 시간의 과학이 결코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23)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사태의 본질에 맞도록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루카치는 이런 식으로 헤겔 미학을 자신의 유물론주의 타당성에 관련 지웠다.
시간과 공간이 늘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명하고 명백하다고 본 루카치는 시간과 공간의 내밀한 연관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생각들을 확장하게 해주는데 유사 공간이나 유사 시간과 같은 표현들을 예로 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마르크스의 정의24)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사 시간에 대한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해 예를 들어 설명한 후 유사 공간은 오직 주관적 특성만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유사 공간Quasiraum을 시간이라는 동질적 표현매체를 통해 작용하는 예술적 구성에 반드시 동반되는, 수용체험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결과로 보았다.
그는 음악과 문학에서의 유사 공간, 조형미술에서의 유사 시간은 예술세계 전체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초입에서부터 인간이 자신의 감각을 가지고 주위세계와 맺는 관계 및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주위세계의 영향과 맺는 관계의 미적 재생산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물신적 분리를 해체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경향과 운동경향으로 인해 그러한 물신적 분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25)고 주장했다.
루카치는 음악의 유사 공간은 그것에 의해 창출된 병존관계가 오직 시간적 선후관계의 계기로서 작용할 때만 미적 의미를 획득하고 유사 공간의 영역에서 수행하는 물신성의 해체라는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시간의 불가역성의 작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의미가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를 좇아 시간을 인간발전의 공간으로 여긴 그는 시간에 내재하는 명백한 방향성이 비유기체적인 자연에 있어서도 특정한 사건경과의 불가역성을 내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했다.
유사 공간이 시간적 선후관계를 자체의 작용이 미치는 한도 안에서 시간적 병존관계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러한 유사 공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 사이의 비교가능성 내지 대비점들을 창출하게 되며, 그러한 대비를 통해 우리는 발전의 결과로 생겨난 새로운 것의 본질을 진정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그 자체로서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음악에서 어떤 모티프나 선율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의미의 반복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현상방식이 재현되는 것은 오로지 새롭게 창출된 상황 속에서 근본적으로 새롭고 변화된 것을 조금도 애매하지 않게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도약대와 같은 것이다.26)
그는 세계창조적 경향을 지닌 예술이 미적 체험의 환기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공간, 시간, 운동과 같은 기본적 범주들을 모든 가능한 효과의 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 고려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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