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 해석이 예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는 예술론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자연은 예술의 패러다임이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 해석이 예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앞서 자연에 대한 이원적 개념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의 사학자 러브 조이A. Q. Lovejoy는 자신의 저명한 연구서 『미학적 규범으로서의 자연 Nature as Aesthetic Norm』(1948)에서 자연이 얼마나 여러 면에서 관찰되어 왔으며, 찬탄의 대상이었는지를 기술했는데 타타르키비츠가 이를 열 가지로 분류했다.16)
1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 전체라는 의미로 달랑베르J. d’Alembert(1717-83)가 이 경우에 속한다.
2 특별히 인간세계라는 의미로 브왈로Nicolas Boileau-Despreaux(1636-1711)가 이 경우에 속한다.
3 인간의 소산이 아닌 초인간적 세계의 의미로 샤프츠베리Shaftesbury(1671-1713)가 이 경우에 속한다.
4 세계의 일반적 형식들이라는 의미로 화가 레이놀즈J. Reynolds(1723-92)가 이 경우에 속한다.
5 세계의 평균적·통계적 형식들이라는 의미로 레싱G. E. Lessing(1729-81)이 이 경우에 속한다.
6 이상화된 실재라는 의미로 뒤 프레스누아가 이 경우에 속하고 어떤 면에서 바뙤C. Batteux(1713-80)도 이에 속한다.
7 자연을 지배하는 필연적 법칙들의 체계라는 의미로 앙드레D. M. Andre가 이 경우에 속한다.
8 우주적 질서의 의미, 단순성, 통일성, 규칙성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자연의 의미가 있고
9 이와는 반대로 무한히 다양하고 풍부한 변칙적인 자연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10 관례 및 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인위성이나 꾸밈이 없고, 똑바르고 단순하며 범상한 것, 구조나 신화나 이상적 형태 없이 존재하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예술의 패러다임으로 이론과 작품을 통해 알려졌다.
자연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만큼 예술론과 작품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17세기의 뉴턴의 패러다임 혹은 자연에 대한 관찰과 해석은 물리학에서 400년 동안 존속했다.
20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의 상대성이론이라는 패러다임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했으며, 곧이어 출현한 새 패러다임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오류임을 입증했다.
나는 시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정의 즉 두 사건의 관계라는 말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던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끊임없이 시간이 흐르는 물이 아니고 쏘아놓은 화살이 아니라 사건들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사실에서 사건이 시간의 척도임을 알았다.
그 후 자연에 대한 나의 인식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는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설을 알고 난 후부터였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공리의 총체”가 완벽한 것인 줄 알았다.
이는 1, 4, 5, 7, 8과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신은 매번 주사위를 던진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말에서 “공리의 총체”가 불확실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9와 10과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연을 규정적인 것으로 이해한 반면 하이젠베르크는 비규정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패러다임이 자연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 입증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자연은 영화 ‘아폴로 13’의 한 장면이다.
우주선에 고장이 생겨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아쉬움으로 우주인의 눈으로 달의 상공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무수한 사건들이 존재하는 지구와 아무런 사건도 알려지지 않은 달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 내가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자연이다.
이런 자연과 예술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그 후 내게 생긴 숙제였다.
자연이 찬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의미가 다양하고 개념의 폭이 유동적이기 때문이었다.
17세기의 고전주의자들·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 감상주의자들, 낭만주의자들, 19세기의 신고전주의자들과 고대 찬미자들 그리고 이즘들 시대 이후17) 현재의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연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바로 유동적인 자연의 개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