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8

 

뉴욕 주 버펄로 태생의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1913~67)는 1931~35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고, 1936~37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와 미국 미술가 학교에서, 그리고 1945~51년에는 뉴욕 대학의 파인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1944~45년 전쟁 동안에는 미국 해군 사진사로 일했고 1944~47년에는 뉴욕의 신문 <PM>지의 평론가와 만화가로 일했다. 1937~47년 미국 추상 미술가 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한 라인하르트의 회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양식상 급격하게 변화하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추상이었다. 1930년대에는 입체주의와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양쪽으로부터 다소 영향을 받아 뚜렷하고 윤곽선이 분명한 기하적 양식을 사용했다. 1940년대에는 올오버 회화 단계를 거쳐 1940년대 말에는 몇몇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 특히 머더웰의 작품에 가까워졌다. 그는 머더웰과 공동으로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 Modern Artists in America>(1950)을 펴냈다.
1950년대 라인하르트의 완숙된 양식은 예술과 생활이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그는 빈 형태, 공허, 반복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추구함으로써 다가올 1960년대의 미니멀 아트를 예견했다. 1950년대에는 색채를 어둡게 하고 색채의 대비를 억제하기 시작하여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과 같은 기하적 형태를 배경 색과 약간의 명도 차이만 있는 색채로 칠하여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한 모노크롬 회화에 가까운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다. 1952년경에는 화면을 대칭적으로 3등분 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각 부분을 거의 분간할 수 없는 ‘완전한 검은색’ 양식으로 나아갔다. 1947~67년 브루클린 칼리지, 1959~67년까지는 헌터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캘리포니아 미술 학교, 와이오밍 대학, 예일 대학, 시러큐스 대학에서 잠시 가르치기도 했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양식적 발전에 대한 지적 근거를 제시하는 교조적인 글을 자주 썼다.
일군의 새로운 예술가들, 특히 필립 거스턴, 콘래드 마카-렐리, 제임스 브룩스, 브래들리 워커 톰린 등이 1950년대 초에 추상 표현주의 기법을 받아들여 추상 표현주의는 뉴욕 화파의 상징적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의 미국 화가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1913~80)은 1916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1930년 로스앤젤레스의 오티스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석달 동안 공부한 후 유럽을 여행했고 1934년 멕시코 벽화가들을 알게 되었다. 1935~42년 연방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를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 멕시코 벽화에서 얻은 경험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으며 동시에 대규모로 구상적 추상을 실험할 수 있었다. 1941~44년 아이오와 주립 대학, 1945~47년 워싱턴 주에 있는 여러 대학, 1951~59년 뉴욕의 여러 대학, 1953~57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가르쳤고, 짧은 기간 동안 다른 여러 곳에서도 강의했다. 1940년대 초에도 여전히 초현실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에 가까우면서도 고유한 구상적 방식으로 환상적인 그림을 그렸다.
거스턴은 1940년대 말 즈음에 도시의 풍경을 어렴풋이 암시하는 추상을 실험했으며 어느 정도는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았지만 구성주의보다는 낭만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표현적, 기하적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1950년경에는 작품에서 구상적인 요소를 제거했다. 그의 이와 같은 방식은 ‘추상적 인상주의’로 묘사되었으며 마카-렐리와 같이 추상 표현주의자들 가운데 좀더 서정적인 화가들과 연관되었다. 1955년경부터는 형태와 분리된 추상적인 색채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색채의 형태’에 관해 언급한 화가들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엷고 부드럽게 처리한 배경의 중앙에 밝고 강렬한 색채의 영역들을 배치함으로써 화면 위의 상호 작용과 연관되어 이미지들이 육중하고 지배적인 효과를 갖도록 했다. 1960년대에는 회색조의 색채가 이전의 밝은 색채를 서서히 대체했고, 희미하게 대상을 연상시키는 특성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풍자적이며 고야처럼 그로테스크한 새로운 구상적 방식을 도입했다. 거스턴은 만화적 기법과, 어울리지 않는 거친 색채를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야만적인 방식의 그림을 그리면서, KKK단을 주제로 한 장면과 허나상적인 사회적 비평을 그렸다. 1975년 일련의 회화 작품을 제작하면서 1950년대의 풍부한 임파스토 기법으로 되돌아갔고 이전의 작품에서 나타났던 KKK단의 ‘두목들’은 밝은 적색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후기 작품에 대한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거스턴은 주로 뉴욕 화파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추상 표현주의자 그룹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에 적었다.
“우리가 추상 미술에서 이어받은 신화 속에는 무언가 우스꽝스럽고 탐욕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회화는 자율적이며 순수하고 스스로 존재하고, 따라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그 한계를 결정함을 이룬다. 그러나 회화란 ‘순수하지 않다’. 회화를 지속시키는 것은 ‘순수하지 않음’을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자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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