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7

 

로스코의 가까운 친구 틀리퍼드 스틸Clifford Still(1904~80)은 노스다코타 주 그랜딘 태생으로 스포캔 대학과 워싱턴 스테이트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1935~41년 워싱턴 스테이트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41~43년 전쟁 산업에 종사한 뒤 1946~50년 캘리포니아 미술 학교에서 가르쳤고, 1951~60년 뉴욕에 거주할 때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63년 은퇴한 후에는 메릴랜드 주의 웨스트민스터에 거주했다. 스틸은 여러 양식들을 실험한 후 1946년 금세기 미술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확고한 추상 표현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인 모호한 형태로부터 출발하여 거의 모노크롬에 가까운 대형 그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로스코와 뉴먼이 얇고 조절되지 않은 물감을 사용한 것과 달리 스틸은 두껍고 표현적인 임파스토 기법을 보여주었으며, 캔버스를 가로질러 뻗어나가는 날카롭고 불꽃같은 추상 형태들을 그렸다.
뉴욕 태생으로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1921년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공부한 애돌프 고틀리브Adolph Gottlieb(1903~74)는 미국으로 돌아와 1923년 쿠퍼 유니언의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다녔다. 1935년 표현주의 그룹 텐의 창립에 가담했고 이듬해 연방 예술 프로젝트Federal Arts Projet에 참여했다. 연방 예술 프로젝트는 1935년 미국 정부가 제창한 사업으로 1943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경제 공황의 타격을 받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국가의 예술적 잠재력을 공공건물과 장소의 장식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연방 예술 프로젝트는 뉴 딜 정책의 일환으로 앞서 수립된 프로젝트들을 토대로 기획되었다. 1933년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1933년 겨울부터 1934년에 걸쳐 예술가들은 주급제로 공공사업에 고용되었다. 프로젝트가 종료된 1943년 6월까지 약 3,600명의 예술가들이 1,600점에 달하는 작품에 동원되었으며, 1,200점 이상의 벽화가 의뢰되었다. 안타깝게도 연방 예술 프로젝트 하에 제작된 벽화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한두 점의 예비 습작만이 전해진다.
고틀리브는 1930년대 후반 원시미술과 미국 인디언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런 관심은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완숙기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에 명백히 드러난다. 이 시기의 풍경화는 특히 비현실적 공간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1937년부터 거주한 애리조나 주 사막의 풍경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고틀리브의 초현실주의적 경향은 1941년 이후 미국으로 피신한 유럽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접촉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예술적 소재의 근원으로서의 무의식에 대한 초현실주의 논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뉴욕 화파의 일원인 그는 특히 1941~51년의 <상형문자> 연작으로 잘 알려졌다. 이 작품들은 여러 구획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각의 구획은 도시적인 형태로 채워져 있는데 이런 형태는 무의식적 연상 작용을 통해 보편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프로이트의 상징이나 추상적인 신화의 개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틀리브는 매우 독창적인 추상 표현주의 화가였으며 세계 각지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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