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예술을 자연으로부터 구별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동·식물을 질료와 형상으로 보고 만물이 변화의 현상 안에서 굴복하지 않고 견뎌낸다고 보았다.
이런 활동적인 원리가 변화의 생산물의 본질을 정의한다.
우리는 자연에 관한 그의 견해를 먼저 이해한 후 예술이 자연의 명백한 순환적 본성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불확실하고 혼돈된 감성을 따르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자연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자연학』과 『천체에 대하여 On the Heavens』에 상세히 적혀 있는데 후자는 전자가 논의하다 남긴 대목에서 시작된다.
이 두 권의 책은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과학을 지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자연에 대해 보편적인 정의를 내렸는데 자연의 본성에 속하는 것들은 그 자체 운동과 정지의 원리들을 갖고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자연은 그리스인이 ‘퓌시스 phusis(physis)’라고 부른 것에 관한 학문으로 퓌시스는 우리가 번역하는 자연의 의미와는 다르다.
이 말은 생성becoming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데 예를 들면 참나무 씨앗의 본성nature이 참나무가 되고, 뽕나무 씨앗의 본성이 뽕나무가 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본성의 뜻을 자연으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낟알의 성장뿐 아니라 낟알 자체도 자연에 포함시키면서 “자연이란 표현은 어떤 자연적 과정 및 그 과정의 산물 양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본성 혹은 자연은 사물이 나서 자라 최종 상태에 이르는 것이며, 이는 그 사물의 존재 목적의 본성 혹은 자연이 최종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자연에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물은 사물이 지닌 본질로 존재하고, 어떤 사물은 외적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동·식물과 순수 질료(원소)는 그 성질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그에게 자연은 사물의 질료를 지칭하는 동시에 형상, 즉 사물의 본질, 자연을 이끄는 힘이다.
따라서 사물들은 동작 혹은 운동의 내면적 원리를 지니는데 그가 말하는 운동이란 오늘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운동보다 넓은 의미로 물리적 운동에 특성의 변화와 크기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연에 대해 이원적 개념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자연을 끊임없는 변화 중에 있는 것으로 보았고, 다른 하나는 변화하는 조건 하에서도 일정하게 지속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 같은 이원적 개념은 중세에까지 통용되었으며, 현재에도 이처럼 시각적으로 알 수 있는 자연과 정신적으로만 알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두 종류의 개념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타타르키비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이원적 개념 혹은 타타르키비츠의 말로 “그리스적 표현의 애매모호성”2)이 로마인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를 12세기에 아베뢰즈Averroes(1126-98)가 퓌시스phusis를 나투라natura로 번역했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다.

“그리하여 나투라는 가시적 사물들 전부summa rerum를,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물의 생성원리, 자연물을 산출해내는 힘을 의미했다. 중세 때는 그 애매모호성을 무해하게 만들기 위해 각각 다른 형용사를 붙여서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을 구별지음으로써 자연이란 표현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보유했다.”3)

타타르키비츠는 자연에 대한 이원적 개념이 뱅상 드 보베Vincent de Beauvais(?-1264)의 『사면경 Speculum quadruplex』에서 확인된다면서 아퀴나스와 같은 스콜라 철학자들 및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1260-1327?)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였고, 또한 브루노Giordano Bruno(1548-1600)와 스피노자Benedict (Baruch) Spinoza(1632-77) 등과 같은 몇몇 근대 철학자들도 이를 수용했다고 적었다.

신의 개념은 자연의 개념에서 비롯했는데 뱅상 드 보베는 『사면경』에서 “능산적 자연은 곧 자연물들의 지고한 규범 혹은 패턴인데 그것이 바로 신이다”라고 했다.
그는 능산적 자연을 조물주로 보았고 소산적 자연을 피조물로 보았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된 근대에는 자연을 창조에 한정했는데 신은 자연의 창조주이나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해석은 예술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예술론에 영향을 끼쳤는데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고 말할 때 자연물의 생성원리, 자연물을 산출해내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과 가시적 사물들 전부를 가리키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는 『엔네아데스』 5장 초에서 “예술은 한낱 가시적 사물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원천을 이루는 원리에까지 미친다”고 했다.
자연물의 생성원리, 자연물을 산출해내는 힘으로서의 자연, 즉 가시적 사물 전체를 생산해내었고 또 생산해내고 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한다.
천 년 후 알베르티도 『회화론』에서 플로티누스가 말한 의미로서의 자연을 언급했다.
타타르키비츠는 자연에 대한 이원적 개념이 오늘날에까지도 수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상주의자들의 주제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 전부를 가리키는 자연이었던 반면 세잔의 주제는 플로티누스와 알베르티가 말한 자연이었다고 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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