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5

 

 추상 표현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와이오밍 주 코디 태생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이었다. 1929년 뉴욕으로 와서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지방주의 화가 토머스 하트 벤턴의 지도를 받으며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폴록은 지방주의 양식으로 작업하면서 동시에 멕시코 벽화가들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43년 금세기 미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곧 그 화랑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금세기 미술 화랑은 페기 구겐하임이 연 화랑으로 초현실주의의 온상과도 같은 화랑이었다. 1940년대 중반까지 다소 틀에 박힌 우아함을 지닌 선적인 양식과 풍부한 임파스토를 강조한 낭만적 양식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들고 추상 표현주의 운동의 기수이자 당대의 가장 중요하고 혁신적인 화가로 알려지게 한 ‘뿌리고 튀기는 drip and splash’ 기법은 1947년 무렵 다소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폴록은 이젤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에 캔버스를 마루 바닥이나 벽에 고정시키고 통에 든 물감을 붓고 뿌렸다. 그 다음 붓이 아니라 막대기, 흙손, 나이프로 물감을 다뤘고 때로는 모래, 유리조각, 혹은 이물질을 혼합하여 임파스토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화가의 무의식을 드러내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 이론과 공통점이 있다. 동일한 이유에서 이는 제스처 회화로 불렸으며 미국에서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었다.
액션 페인팅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제스처 회화gestural painting는 좀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제스처 회화는 하나의 그림은 그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화가의 행위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몸짓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록된 행위가 화가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제스처란 명칭은 특히 물감을 사용하는 태도와 붓놀림이 시각적으로 확인되고 의도적으로 강조되는 회화에 적용된다. 이 용어는 이따금 앵포르멜 또는 타시즘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폴록은 올오버 회화all-over painting 양식을 도입한 화가로도 기억되고 있다. 화면 전체가 구조적으로 거의 구별하기 불가능하게 균일한 방식으로 처리되는 회화 양식인 올오버는 폴록의 ‘뿌리고 튀기는’ 기법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 뒤로 이 용어는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1928~)처럼 ‘휘갈겨 쓴’ 구성 요소를 사용하거나 색면 회화 화가들처럼 색채를 사용하여 캔버스 전체를 비교적 단일하게 처리한 회화 작품을 일컫는다. 1950년대 중반부터 추상 표현주의에서 이탈하여 일명 후기 회화적 추상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미술 운동을 시작한 트웜블리는 ‘쓰여진 이미지들’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끄적거림이나 낙서와 외형상 유사했다. 그는 전통적인 구성 개념을 거부하고 폴록이 시작한 올오버 양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폴록의 것보다 느슨하고 자유로웠다. 그는 중앙에 선을 그어 면을 나누거나 거의 색조의 변화가 없는 거대한 표면에 낙서가 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조각들을 붙여 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트웜블리의 작품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탈분화 dedifferentiation’ 미술과 비교되기도 한다. 독일어로눈 ‘슈트로이-콤포지치온 Streu-Komposition’이라고 하는 올오버 양식의 그림은 관람자의 주의를 화면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키며 균형, 조화, 리듬 등에 의해 서로 연결되는 중심 부분들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림은 미니멀 아트의 기초적 구조들과 유사한, 구분이 없는 하나의 시각적 단일체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연결된 요소들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종속시키거나 포함하지 않으므로 올오버 회화는 비관계적이다.
폴록의 회화는 캔버스의 형태와 크기에 좌우되지 않으며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미지에 맞게 캔버스의 일부가 깎여 있거나 잘라져 있기도 하다. 이후 이런 회화 양식에 반발하고 나온 후기 회화적 추상 화파들이 캔버스의 형태를 회화적 이미지와 일치시키는 데 역점을 둔 것도 부분적으로는 폴록의 올오버 양식의 영향이었다. 또한 폴록은 새로운 회화 공간을 도입했다. 서체적 혹은 갈겨 쓴 염료 기호들이 화면에 매우 얕은 깊이감을 창출하며, 움직임은 캔버스 내부가 아니라 캔버스를 가로질러 중앙을 향한다. 이런 모든 특징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개화한 새로운 미국 회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폴록은 1950년대에 올오버 양식의 작품뿐만 아니라 구상적이거나 유사 구상적인 흑백 작품 그리고 풍부한 임파스토를 강조한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했다. 해럴드 로젠버그를 비롯한 진보적인 평론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지만 난해한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폴록은 20세기 미국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일반적으로 안정받았으나 화가들은 이미 그 운동에 반발하고 있었다. 폴록은 뉴욕 화파 중 가장 빈번히 그리고 가장 많은 지역에서 전시회를 가진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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