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4
1940년대 말 뉴욕 화파는 두 그룹으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는 드 쿠닝과 폴록을 주축으로 한 그룹으로 이 그룹의 예술가들은 유럽의 제스처 회화에 해당되는 태도를 표명하면서 회화 작품을 완성작이라기보다는 점차 드러나는 과정의 기록, 즉 창조 과정 중에 있는 예술가의 내적 정신 상태가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로테르담 태생의 네덜란드계 미국 화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1904~97)은 1916~20년 상업 장식 회사에서 견습 생활을 하면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조형 예술 및 기술 과학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26년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작품을 제작했지만 곧 아슐리 고르키 및 추상 표현주의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다른 예술가들로 구성된 서클에 가입했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칸딘스키와 피카소의 말기 입체주의로부터 유래된 보다 발전된 추상 기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드 쿠닝은 1930년대에 여러 기법으로 그렸고 초상화와 인물 스케치는 쟈코메티의 후기 작품을 연상시켰는데, 이는 1970년대가지 그의 작품의 주조를 이룬 인물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동시대 화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물을 주제로 삼은 화가로 처음에는 남성을 후에는 여성을 그렸다. 그는 동갑내기 가장 가까운 친구 고르키와 그 밖의 화가들처럼 초현실주의의 환상적인 측면에 관심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유기체적이고 생물 형태적인 형태를 들죽날쭉한 선으로 표현한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추상화를 그렸다.
1948년까지 전시회를 갖지 않았지만 드 쿠닝의 곡선 형태를 담은 차분한 회색 색조의 추상과 모호하게 암시된 생물 형태적 형태는 1940년대 초 뉴욕 화파의 화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1948년 찰스 이건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드 쿠닝은 폴록과 함께 자발성과 액션 페인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추상 표현주의 화파의 비공식적인 리더가 되었다. 드 쿠닝의 공간 구성, 표현적 붓놀림에 담긴 에너지는 그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드 쿠닝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여성 주제도 함께 발전시켜 나갔다. 이따금씩 이것을 에로틱한 상징, 흡혈귀, 출산의 여신으로 바구어 갔는데, 인물화에서도 이전의 보다 순수한 추상화와 마찬가지로 공간의 문제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그는 인물의 모델링을 생략하고 울퉁불퉁한 윤곽선만을 사용하여 인물과 환경이 뒤섞여 흐르도록 표현함으로써 인물과 환경의 혼합체인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를 ‘비환경’이라고 칭했다. 그는 때때로 해부학적 형태를 분해하고 위치를 옮겨 격렬한 선적 추상을 만들어냈다. 드 쿠닝은 뛰어난 독창성으로 인해 추상 표현주의 운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비록 순수 추상만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전 생애를 통해 표현주의에서 한 번도 이탈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