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토의 『일상적인 것들의 변용』 마지막장에서의
미술품에 대한 정의는 각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다.
각 시대의 미적 판단은 그 시대 사람들의 취미와 미에 대한 관념에 근거하고 취미와 미에 대한 관념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고급미술high art이냐 저급미술low art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뮤지엄이나 화랑 혹은 전시장에서 “저것은 미술이 아니야!”라고 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이 미술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고급 미술이 아니고 저급 미술임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하지만 미술품이 반드시 고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미술은 고상한 미적 판단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때 모더니즘 이론가들은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이란 말로 미술품들을 구별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짓으로 “미술품이 왜 고급이어야만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에는 미적 등급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미적 판단의 척도가 있을 따름이다.
“미술은 표현이다 Art is expression”라는 말이 20세기 초 미적 판단의 척도로 제기되었다.
미술을 실재에 대한 모방으로 보지 않고 실재에 대한 느낌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였다.
이런 미적 판단의 척도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였다.
그는 에세이 『화가의 노트 Painter’s Note』에서 미술을 궁극적으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표현은 ‘강조하다 pressing’ 혹은 ‘짜내다 squeezing out’란 뜻이지만 미술에서의 표현은 발랄한 은유를 뜻한다.
발랄한 은유가 미적 판단의 척도로 받아들여졌다.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82)은 『인간과 동물의 감성의 표현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서 인간은 자신의 감성적 상태를 표현한다고 했는데 이를 본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외향적 습관으로 내적인 긴장감을 털어내는데 이를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표현은 욕망에 대한 만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다.
미적 경험과 관련해서 베네데토 크로체는 참다운 표현이란 오로지 미적 표현이라고 했는데 미적 표현이 아닌 것은 아예 표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조지 산타야나는 『미의 느낌 The Sense of Beauty』에서 “표현이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 이는 정녕 인상인 것이다”라고 했다.37)
미술이 표현임을 단토 역시 『일상적인 것들의 변용』에서 주장했고, 『미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1997)에서도 거듭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미술품들에는 해석할 만한 의미가 있게 마련이며 해석할 만한 의미가 없다거나 미처 발견되지 못하다면 그것들은 미술품이 아니거나 미술품임이 보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석될 수 있는 의미란 앞서 말한 예술가의 미적 관점이나 발랄한 은유의 형식으로 예술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한 표현을 말한다.
단토는 미술에 있어 흥미롭고 본질적인 것이란 예술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자발적 능력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의 혹은 그녀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서 “표현하는 것 -태도나 바라보는 방법- 에서 실패했다면 그 작품은 미술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38)라고 했다.
단토는 또 “예술이 목적을 지니지 않았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 어떤 면에서 세계의 변용이나 확인은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여진다”39)고 했으며,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늘 거기에 있는 그 은유(혹은 비유)를 포착하는 것이다”40)라고 했다.
단토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노엘 캐롤Noel Carroll은 단토의 『일상적인 것들의 변용』 마지막장에서의 미술품에 대한 정의를 다섯 항목으로 요약했다.41)
1 미술품에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2 미술품은 예술가의 태도나 견해를 제시해야 한다.
3 미술품은 수사적 생략들에 의한 것이다.
4 미술품은 역사적-이론적 미술세계 배경에서 오는 일부 생략추리적enthymematic 재료를 갖춘다.
5 미술품은 그것에 의해 수사적으로 제출된 생략추리적 간격들을 채우는 데 관람자들의 참여를 관여시킨다.
캐롤은 3의 경우 “생략들”보다는 비유들tropes이 더 적합하겠지만 1, 2, 3의 분류가 타당하다면서 단토가 미술품에 대한 이론적 기반들에 관해 7장에서 주로 언급했을지라도 4는 예증되지 못했다면서 5는 관람자들이 미술에 대한 단토의 개념을 받아들일 때만 타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1-3의 뜻은 미술품에는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는 예술가의 미적 태도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혹은 견해를 표현한 것이다.
4와 5는 예술가와 관람자와의 관계를 위한 특징적 방법이다.
1-3만으로도 미술품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모든 미술품이 예술가의 의도적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속하는데 직접 생산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그의 의도적 행위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미술품으로 변용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미술품이 예술가의 의도적 표현이라고 단정할 때 단토의 말대로 늘 일종의 미적 태도나 견해를 나타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다.
즉 미적 태도나 견해는 있더라도 예술가가 이를 표현하지 않으려는 대단히 겸손한? 미술품도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나는 1-3에 해당하지 않는 그런 미술품을 머리에 떠올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