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미술 5
들로네는 1912년에 자율적인 색채 구조를 구축하는 순수 색면들이 서로 침투하고 회전하는 모습을 묘사한 추상 연작 <동시적 원반>과 <원형 리듬>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로지 색채만이 형태이자 주제이다. 미술이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한 묘사적이고 문학적일 수밖에 없으며, 불완전한 표현 수단으로 인해 점차 타락하여 노예 상태나 모방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가 빛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사물에 비친 빛이나 여러 사물 간의 관계에 의해 파생되는 빛을 그리는 데 급급하여 빛에 회화적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르피즘은 비록 단명했지만 비재현적 색채 추상의 추구를 목표로 삼은 최초의 운동이었다. 들로네는 후기의 저서 <입체주의에서 추상 미술까지 Du Cubisme a l'art abstrait>(1957)에서 오르피즘이란 명칭을 이런 색채 작품이나 쿠프카의 작품과 유사한 작업, 미국 싱크로미즘 화가 스탠턴 맥도널 드-라이트와 모건 러셀의 작품 등에 한정하여 사용했다. 즉 그는 오르피즘의 기원을 입체주의보다는 오히려 인상주의와 쇠라의 신인상주의로 파악했다.
순수하게 색채만으로 회화의 형태와 내용 모두를 전달하려고 한 미술 운동이 싱크로미즘Synchromism이다. 파리에서 작업하던 두 명의 미국 화가 스탠턴 맥도널 드-라이트Stanton MacDonald-Wright(1890~1973)와 모건 러셀Morgan Russell(1886~1953)이 들로네의 오르피즘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켰다. 미술 평론가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와 형제인 맥도널 드-라이트는 1907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일년 반 동안 수학한 뒤 에콜 데 보자르와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회화를 수학했다. 그는 모건 러셀과 함께 색채 이론을 연구했으며, 1912년경 과학적인 색채 배치에 바탕을 둔 회화 이론을 전개했다. 이 이론은 1913년 뮌헨의 노이에 쿤스트 살롱에서, 그리고 그 뒤 파리에 있는 베르냉-죈 화랑에서 열린 합동 전시회에서 발표되었다. 이 이론은 쇠라와 시냐크 등 신인상주의자들이 슈브뢸의 <색채의 동시 대비 법칙 De la loi du contraste stimultane des couleurs>과 O.N. 루드의 <현대 색채학 Modern Chromatics>으로부터 끌어낸 이론들을 확장시킨 것이었다. 이 이론은 1913년 이후 들로네와 쿠프카가 색채 원반 추상으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주었다. 뉴욕 태생의 러셀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1906년이었고 잠시 동안 마티스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파리에서 맥도널 드-라이트와 친구가 되어 그와 함께 슈브뢸의 색채 이론을 공부하고 들로네의 오르피즘과 유사한 순수한 색채 회화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맥도널 드-라이트는 1919년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하여 싱크로미즘 회화를 그만두고 컬러 영화를 위한 키네틱 기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편 러셀은 1920년 무렵부터 구상적인 회화로 전환했다. 1930년대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큰 종교화를 그렸으며 1946년 미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