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미술 4
다음으로는 즉각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의 액션 페인팅을 예로 들 수 있다. 1929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지방주의 화가 토머스 하트 벤턴의 지도를 받으며 회화 공부를 시작한 폴록은 1930년대에 지방주의 양식으로 작업하면서 동시에 멕시코 벽화가들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40년대 중반까지 다소 틀에 박힌 우아함을 지닌 선적인 양식과 풍부한 임파스토를 강조한 낭만적인 양식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들고 추상 표현주의 운동의 기수이자 당대의 가장 중요하고 혁신적인 화가로 알려지게 한 ‘뿌리고 튀기는 drip and splash’ 기법은 1947년 무렵 다소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폴록은 이젤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캔버스를 마루바닥이나 벽에 고정시키고 통에 든 물감을 붓고 뿌렸다. 그 다음 붓이 아니라 막대기, 흙손, 나이프로 물감을 다루었으며 때로는 모래나 유리조각, 혹은 다른 이물질을 혼합하여 임파스토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화가의 무의식을 드러내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 이론과 공통점이 있다. 동일한 이유에서 이는 제스처 회화로 불렸고 미국에서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폴록은 올오버 회화 양식을 도입한 화가로도 기억되고 있다. 이는 전체 화면 내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을 두지 않으며 따라서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전통적 의미의 구성을 포기한 회화 양식이다. 폴록의 회화는 캔버스의 형태나 크기에 좌우되지 않으며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미지에 맞게 캔버스의 일부가 깎여 있거나 잘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 이런 회화 양식에 반발하고 나온 후기 회화적 추상 화파들이 캔버스 형태를 회화적 이미지와 일치시키는 데 역점을 둔 것도 부분적으로는 폴록의 올오버 양식의 영향이었다. 폴록은 새로운 회화 공간을 도입하기도 했다. 서체적 혹은 갈겨 쓴 염료 기호들이 화면에 매우 얕은 깊이감을 창출하며, 움직임은 캔버스 내부가 아니라 캔버스를 가로질러 중앙을 향한다. 이런 모든 특징들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개화한 새로운 미국 회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10년까지 추상 미술은 무르익어 갔고 여러 나라에서 동시적으로 발전되었다. 칸딘스키는 종종 추상 회화를 그린 최초의 인물로 인용되지만, G.H. 해밀턴이 말한 것처럼 사실상 어떤 특정한 화가를 선택하여 그를 최초라고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초의 추상 수채화’로 알려진 칸딘스키의 작품에는 1910년이라는 날짜와 서명이 기입되어 있지만 몇몇 미술사학자들은 이 작품이 제작된 것은 그보다 더 이후의 일이며, 칸딘스키가 이를 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 기입해 넣은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칸딘스키에게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초기 추상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최초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열심이었으며, 작품 제작 날짜를 앞당기려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다.
개별 선구자들에 이어서 곧 추상 미술 그룹과 운동이 뒤따라 나타났다. 그 최초의 것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오르피즘과 싱크로미즘이 있다. 아폴리네르가 1912년 ‘섹시옹 도르’ 전시회와 1913년 베를린의 슈투름 화랑에서 전시된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을 설명하기 만들어낸 오르피즘Orphism은 비재현적 색채 추상을 의미했다. 아폴리네르는 저서 <입체주의 화가들>(1913)에서 이를 가시적인 영역으로부터 빌려온 요소가 아닌 전적으로 화가 자신이 창조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구조를 그리는 미술이라고 설명했다. 오르피크orphique란 말을 과거에 상징주의자들이 사용한 적이 있으며, 아폴리네르는 여기에 낭만적 의미를 부여하여 엄격한 입체주의에 서정적 색채를 가미하는 시도와 쿠프카처럼 순수 색채 추상과 음악의 유사성에 관심을 갖는 경우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마케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가 오르피즘에 관심을 갖았던 것은 이런 낭만적 연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