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미술 3

 

 추상 미술의 문제를 바의 관점보다 더 후대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보면, 추상 미술에는 세 가지 주요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적인 외관을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형상으로 감축시키는 방법으로, 브란쿠시의 조각을 예로 들 수 있다.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는 11살 때 가출해 7년 동안 방황한 끝에 크라이오바에서 고급 가구 제작자의 도제로 일하다가 1898년 부쿠레슈티의 미술 학교에 들어갔다. 1902년 뮌헨으로 갔고 그 후 걸어서 파리까지 간 뒤 1904년 그곳에 정착하여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했다. 이 무렵 브란쿠시는 로댕의 자연주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다. 그의 작품을 본 로댕은 자신의 조수 겸 제자가 될 것을 제안했지만 브란쿠시는 이를 거절했다. 이 무렵 그는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고 이는 사물의 외관을 충실하게 혹은 표현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고 믿었다. 이런 노선을 따라 그는 추상 분야에서 금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그는 묘사하고자 하는 형태를 단순화시켜 개개의 사물을 서로 구별짓게 하는 고유한 세부 요소를 제거하는 한편 각 부류가 가진 특징적인 형태를 살려서 강조했다. 단순함과 총체적 진리야말로 그의 이상이었다. 1920년 브란쿠시는 파리 교외에 살던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저택 정원에 세울 목조 조각 <끝없는 기둥>을 만들었다. 높이 7미터의 이 기둥은 높이 올려다볼수록 점점 크기가 작게 보이는 9개의 마름모꼴 형태로 구성되었다. 브란쿠시는 이후에도 야러 번 기둥 모티프를 반복해 다루었으며 특히 1937년 티르구지우의 공원을 장식할 조각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조국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대도 기둥 모티프를 사용하여 높이 29.33미터의 강철 조각 <끝없는 기둥>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받침대 역할을 하는 강철 사각 기둥 위에 15개의 단위 형태들을 세운 것으로, 맨 위와 맨 아래 부분은 이 단위 형태를 반으로 자른 형태로 되어 있다.

생전의 브란쿠시의 명성은 대단했으며, 그가 미친 영향 또한 상당했다. 엡스타인과 아르치펜코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었고 고디에-브제스카는 공인된 브란쿠시의 숭배자였다. 칼 안드레이는 브란쿠시의 <끝없는 기둥>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변환시켜 공장 생산된 내화 벽돌들을 수평으로 배열해놓았다고 주장했다. 브란쿠시는 자신의 작업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는데 그 중에는 여러 차례 개작된 그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1976년을 ‘브란쿠시의 해’로 공식 지정했으며, 영국에서는 숀 허드슨이 예술원의 도움을 받아 티르구지우의 공원에 대한 기록 영화인 <루마니아인 브란쿠시>를 제작했다.

자연적인 외관을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형상으로 감축시키는 방법 외에도 비재현적인 기본 형상들로 작품을 구축한 경향이 있었는데 벤 니컬슨Ben Nicholson(1894~1982)의 부조가 여기에 해당된다. 버킹엄셔의 데넘 태생 니컬슨은 1911년 잠시 슬레이드 미술 학교에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정식으로 회화를 배우지는 않았다. 전쟁 중에 보티시즘 화가들과 접촉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몇 점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1920년 위니프리드 데이커(로버츠)와 결혼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21년 파리에 머물며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들을 보았다. 1920년대에는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는데 이 작품들은 입체주의의 피상적인 매너리즘에 결코 찬성하지 않으면서 입체주의적 방식의 추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보여주었다. 기하 추상에 관심을 돌린 그는 특히 마분지를 잘라 저부조를 제작했는데 주로 자신의 이름과 연관된 형태를 만들었다. 1934년 세븐 앤드 파이브 협회에서 첫 번째 흰색 부조를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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