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함이란 쇼펜하우어에게 단순히



보상케는 쇼펜하우어가 미를 양면적으로 보았다면서 의지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과 그러므로 해서 전체 기구로부터, 즉 우리의 가장 큰 부도덕과 불운, 살려는 의지 - 설명, 원인, 수단과 결말, 목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24-1)
다른 한편 미는 우리의 정신에 개념, 즉 어떤 등급에서 의지의 구체화로 채운다.
모든 것이 어느 수준에서 의지의 구체화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어느 수준에서 독특하며 어느 수준에서 아름답다.

추함이란 쇼펜하우어에게 단순히 불완전한 명시defective manifestation이거나 의지의 부분적 구체화이므로 단순히 비교적 개념이다.
그는 숭고를 미와 동일하게 취급했다. 다만 다른 점으로 심사숙고한 대상들과 개인의 의지 사이에 적대하는 관계를 가정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노력에 의해 정복되는 적개심이 이 특별한 노력에 의해 그 적대하는 대상 안에서 개념의 순수한 묵상을 성취하는 가운데 주제의 정신적 고양spiritual exaltation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보았다.24-2)

그는 사람들이 관람자의 입장을 취할 때 사물에 대해 통상적이고 실질적인 태도를 떠날 때, 사물의 근원과 목적에 대해 더 이상 사고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것에만 집중할 때, 미적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적 경험을 의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대상을 보는 일에 마음의 힘을 집중시키고 스스로 그 대상 속에 잠겨서 자신의 의식을 자신이 보는 것, 즉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채운다는 것으로 자신의 개성을 망각하게 되고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게 된다.
주관의 대상이 반영이 되는 것이며 의식 속에는 보는 이와 보여지는 것 사이의 구분이 없어진다.
이런 마음의 상태, 대상에 대한 이런 수동적 순종을 쇼펜하우어는 관조, 미감적 쾌aesthetiches Wohlgefallen,25) 미감적 태도aesthetiches Betrachtungsweise26)로 명명했다.

그의 이론에서 플라톤의 광기 개념을 본다.
자연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개념은 피타고라스가 주목한 미적 태도로서의 ‘관람자’의 태도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사고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가 공식화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이론처럼 보인다.
타타르키비츠는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이론을 조립해 하나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세움으로써 그 이론을 오히려 방해했다고 비판했다.27)
쇼펜하우어가 관조를 끝없는 의지의 위안으로 해석함으로써 관조론을 형이상학 속에 빠뜨린 것으로 보았다.

관조의 본질은 지각이지만 주어진 순간에 중요하거나 꼭 필요한 특징들을 눈과 귀로 파악하는 평범한 종류와는 다른 특별한 종류의 지각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대상 속에 “깊이 빠져들고” 대상으로 “스스로를 채우며 대상을 반영시키는” 충만되고 수동적이며 집중된 지각으로 보았다.
주관으로부터 쾌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대상에 순응하고 대상의 미를 흡수함으로써 대상으로부터 쾌를 끌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미적 경험이란 관람자의 특별한 경험을 말하며, 집중의 경험이고 미에 대한 수동적 순응의 경험이다.
고대로부터 이런 사상은 만연되었는데 그가 고전적인 형식으로 정립시키고 명칭을 부여했다.
다만 명칭이 종교적 관조의 성격도 띠고 있으므로 미적 관조만을 가리키기에는 부적당하다.

쇼펜하우어의 관조론은 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에게 영향을 주었고, 니체로 하여금 『비극의 탄생 The Birth of Tragedy』(1871)을 통해 미적 경험의 이원적 개념을 창출하게 했는데 그것이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는 ‘아폴론적인 것 Apollinian’과 비균형적이며 환희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 Dionysi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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