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광기는 천재성이란 의미로
미술품은 어떤 것을 위해 유용해 보이더라도 철학적 진실에서 보면 그렇지 못하며, 논리적 무목적성은 그것을 사용하는 어떤 것도 오용이나 왜곡될 것이므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무관심과 관련 있었으므로 예술은 체계적으로 중립을 지켰던 것이다.
칸트는 분명 예술이 즐거움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상상했는데 그것은 무관심한 즐거움이었다.
이를 단토는 실제 요구들의 만족이나 실제 목적들의 달성과 연고가 없는 이래 미온적인 만족감으로 보고 일종의 발작적인 즐거움, 즉 고통이 없는 가운데 존재하는 즐거움으로 본다.18)
칸트의 미학은 어느 특정한 본질이라도 가지지 않는 채 한 본질을 가지는 것인 양 보였으므로 바로 여기에 헤겔의 예술철학이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 단토의 주요 견해이다.
역사를 그 자체 스스로 자각되는 변증적 계시로 본 헤겔은 정신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가 정신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역사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말하자면 칸트의 말로 특정한 본질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 자체에 소원하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자체를 통해 자체에 일치한 때 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예술과 철학이 각각 상이한 단계로 존재한다고 보고 철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예술의 역사적 사명으로 간주했다.
철학이 자유롭게 되면 예술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한 것이다.
역사에 대한 엄청난 철학적 비전을 갖고 있던 헤겔은 예술의 그 완연한 형태 자체가 이미 철학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확증을 갖고 예술의 철학적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정신적 사명에서 해방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은 예술철학으로 달성되었다.
예술에 대한 철학적 특권 박탈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어 칸트로까지 이어졌지만 헤겔에 이르러 그 숙명적 특권 박탈이 비로소 예술철학을 통해 예술과 철학 모두가 자유로운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스스로를 가리켜서 “거듭 태어난 헤겔리안”이라 칭하는 단토의 요지이다.
이는 플라톤의 모방론을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의 모방22)으로 간주했으므로 지식과 달라 예술이 영원한 형상을 포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름』에서 사람을 선동했기 때문에 그를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에서 배척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단토가 파악한 플라톤의 의도였고, 플라톤이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시인이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호메로스Homer(BC 9세기경)를 해석하기 때문이었다.
시인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왜 자신이 옳거나 그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의 낮은 수준인 여섯 번째 단계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고 플라톤은 예술가를 경멸한 것이다.
플라톤의 사고에 혼돈이 생겼는데 시인을 얕잡아 본 그가 미를 지닌 작품이 하나의 형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 때문이다.
예술가가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아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즉 무당처럼 신지핀 자가 된다면 그는 오히려 통찰력을 갖게 되어 일반지식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23)
광기mania를 말한 것으로 그는 신성에 의해 광기를 갖게 된 자는 영감을 받아 신의 인도에 인해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24)
광기는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바카스 종교에서 신성을 느끼는 환희에서 영향을 받은 개념인 듯 보인다.
그의 예술론은 앞뒤가 맞지 않아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광기를 인정했으므로 예술가가 직접 진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더라도 이런 경우를 소수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으로 한정했으므로 모든 사람이 진리로 나아갈 수 없는 한 일반적 의미로서의 예술에 대한 그의 정의는 미결로 남을 수밖에 없다.
플라톤의 광기는 천재성이란 의미로 칸트에게로까지 전수되었고, 칸트는 1790년에 출간한 『판단력 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미적 경험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는데 다음과 같다:
무관심성, 비개념성, 형식성, 심의 전체의 관여, 필연성과 보편성. 필연성은 주관적임을 뜻하고 보편성은 비규칙적인 것을 뜻한다.
미적 경험에 대한 칸트의 이론은 플라톤의 광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칸트가 자신의 입장에서 미적 판단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정당화했고, 또 정당화하려 한 것은 대상의 어떤 인식도 없는 심미적 취미의 주관적 보편성이었으며, 순수 예술Schone Kunste 영역에서는 모든 규칙 미학Regelasthetik을 넘어서는 천재의 우월성이었다.
칸트는 순수 예술을 ‘천재의 솜씨 Kunst des Genies’로 보았다.
그는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미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대상을 평가하는 경우에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예술미의 가능성, 곧 그 안에 깃들여 있는 천재성이라고 했다.
그는 또 예술뿐만 아니라 이것을 평가하는 특유의 올바른 취미 역시 천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