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레디메이드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1913년 가을 새로운 장소로 작업실을 옮긴 후 자전거 앞바퀴를 부엌에서 사용하는 등받이 없이 걸터앉는 원형의자 위에 거꾸로 세워 조립했다.(뒤샹 101-1) 평론가들은 그것을 20세기의 첫 레디메이드 작품이라고 했고, 또는 움직이는 첫 조각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뒤샹은 평론가들이 말한 의도를 갖고 그것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렇게 제작하고 싶어서 만들었을 뿐이다. 그는 자전거 바퀴는 “즐거움처럼 그저 나타난 것”이라면서 말했다. “네가 불이나 연필깎기를 가진 것처럼 불필요한 것이 내 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운동을 행하는 즐거운 부속품이다.” 자전거 바퀴를 앞으로 혹은 뒤로 밀면 바퀴살은 보이지 않지만 바퀴가 천천히 돌면서 바퀴살이 불분명하게 보이다가 결국 분명해진다. 그는 <자전거 바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제작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내가 사용하려고 제작한 것이었다”고 했다.

레디메이드란 말은 2년 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지만 이런 말이 통용되기 전 1914년 그는 레디메이드를 두 번 더 발견했다. 1월 어느 날 저녁 그는 가족이 사는 루엥으로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 불이 켜진 진열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불이 켜진 진열장은 약국 표지판처럼 빛에 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게 주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재료를 파는 상점에 가서 나무와 강이 그려진 무의미한 컬러 석판화를 프린트한 종이를 석 장 샀다.(뒤샹 121) 그는 약국 표지판처럼 그 종이에 과슈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동그란 점을 그렸는데, 여동생 수잔이 약사 남편과 1914년에 이혼한 것을 상징한 것이라면서 “지성적인 개념을 나타내기 위한 시각적인 개념의 이그러뜨림이었다”고 했다.

뒤샹이 말한 또 다른 레디메이드는 병을 말리는 데 사용하는 <병걸이>(뒤샹 101-2)로서, 이 경우 시각적 이그러뜨림과는 무관했다. 프랑스인은 포도주병을 계속해서 사용하는데 이와 같은 병걸이에 포도주병을 말린 후 그 빈 병을 포도주 상점에 가지고 가 포도주를 채운다. 그는 상점에서 병걸이를 구입했지만 포도주병을 말리는 데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내가 병걸이를 구입한 것은 레디메이드 조각이란 생각 때문이었다”고 그는 2년 후 수잔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하지만 병걸이는 그의 작업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 레디메이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된 적은 없었다. 
 

뒤샹이 뉴욕에 도착한 것은 1915년 6월 15일이었다. 1913년 2월 17일에 개최된 대규모 아모리 쇼에 작품을 네 점 출품했고 언론을 통해 뒤샹의 작품이 알려졌으므로 미국에는 뒤샹을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모리 쇼를 기획했던 월터 패츠가 항구에서 뒤샹을 반가이 맞았고 월터 아렌스버그(뒤샹 108, 110, 109)가 경제적으로 후원했다. 뒤샹보다 아홉 살 많은 아렌스버그는 피츠버그의 커다란 스틸 회사 사장의 아들로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00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로 가서 오래 머물면서 이탈리아어를 배웠으며,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다. 유럽의 모더니즘에 매료된 그는 미술품을 수집했고 뒤샹의 작품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렌스버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조교로 잠시 근무하다가 뉴욕으로 와 기자생활을 하면서 <이브닝 포스트>지에 이따금 미술평론을 기고했다. 현재 필라델피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뒤샹 작품은 그가 구입하여 수집한 것들로 타계하기 전 기증했다.

뒤샹은 또 다른 레디메이드를 선보였다. 그는 컬럼버스 애비뉴에 있는 철물점에서 눈을 치울 때 사용하는 눈삽을 구입했다.(뒤샹 116) 눈삽은 미국의 어느 철물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흔한 것이다. 왜 뒤샹이 그것을 샀을까? 뒤샹은 그런 삽을 과거에 본 적이 없는데 프랑스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눈삽을 스튜디오로 가지고 와서 물감으로 <부러진 팔에 앞서서>라고 제목을 적은 후 ‘from Marcel Duchamo 1915’라고 서명했다. 그는 눈삽의 손잡이를 철사에 묶어 천장에 매달았다. 그에 의해서 평범한 물질이 하나의 작품으로 선정된 것이다. 뒤샹은 수잔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내 화실에 가면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를 볼 것이다. 병걸이는 레디메이드 조각으로 내가 구입한 것이다. 여기 뉴욕에서 나는 동일한 특성을 지닌 물건을 구입하여 레디메이드(처음으로 영어로 레디메이드란 말을 사용했다)로 취급하고 있단다. 네가 영어 ready made의 뜻을 이해할 줄 안다. 난 영어로 제목과 이름을 적어넣는다. 예를 들면 커다란 눈삽에 ‘부러진 팔에 앞서서’라고 적었는데 프랑스어로 En avance 여 bras casse가 될 것이다. 그것을 낭만주의나 인상주의 또는 입체주의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들과는 무관하단다. 다른 레디메이드 조각은 <두 번에 걸친 비상사태>인데 프랑스어로는 Danger (Crise) en faveur de 2 fois이다. 이런 머리말들은 실제로 말하기 위해서이다. 병걸이를 집으로 가져 가거라. 먼 이곳에서 난 그것을 레디메이드 조각으로 만들려고 한다. 병걸이 바닥 안쪽 둥근 곳에 은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어주기를 바란다.
From Marcel Duchamp"

수잔에게 준 뒤샹의 지침은 이미 때가 늦었다. 오빠의 화실을 청소하다가 자전가 바퀴와 병걸이를 발견하고 수잔은 쓰레기로 알고 내다버렸다. 현재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미국의 필라델피아 뮤지엄 등에 있는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는 뒤샹이 제작한 본래의 것들이 아니고 나중에 재생한 것들이다. 뒤샹이 편지에 언급한 <두 번에 걸친 비상사태>는 눈삽과 마찬가지로 그가 구입한 것인데,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고 현존하지도 않는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미술품으로 취급하여 그것에 서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미술인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미술품이란 말인가? 레디메이드는 미술을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는 미술품이 되었다. 그가 어떤 사물을 선정하든지 그것에는 그의 특유의 아이러니와 유머가 있고, 미적 모호함이 있다. 그러나 그는 레디메이드를 평생 20개 이상 선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모순이며, 뒤샹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레디메이드에 관한 그의 개념도 계속 달라졌으므로 모순은 더욱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점을 훗날 카반느가 뒤샹에게 물었다.

카반느: 무엇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레디메이드 사물들 중 하나를 선정하게 했습니까?

뒤샹: 사물에 달렸지. 보통 난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관심이 있었어. 사물을 선정하는 일은 어려운 이유는 보름만 지나면 그 사물을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게 된단 말이야. 무관심한 마음으로 미학적 감성을 가지지 않은 채 사물을 보아야 하네. 레디메이드를 선정할 경우 시각적 무관심으로 그렇게 해야 하고, 동시에 좋고 나쁘다는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선정해야 하네.

카반느: 감각이란 무엇입니까?

뒤샹: 습관이야. 이미 받아들인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 자네가 수차례에 걸쳐서 반복한다면 그것이 감각이 되는 것이지.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같은 것일세. 감각일 뿐일세.

카반느: 무엇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했습니까?

뒤샹: 기계적인 드로잉이었어. 그것은 모든 회화적 전통 밖의 것으로 감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지.

카반느: 계속해서 인식하는 것에 대적하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하시는군요.

뒤샹: 미학적 느낌이 있도록 형상 혹은 색을 만들며 ... 그리고 그것들을 반복하고 ...

카반느: 선생님은 반자연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 사물로 그렇게 하시는군요.

뒤샹: 그래,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늘 같았어. 내 책이랄 수 없지. 그것은 그렇게 되어진 거야. 나 혼자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란 말일세. 책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나의 방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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