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책 연작 김광우씨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최근 가장 왕성하게 미술관련 책을 쓰고 있는 미술 저술가를 꼽자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김광우(54)씨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했다”는 표현에 들어맞게 김씨는 지난 97년 미국에서 귀국한 뒤 <폴록과 친구들>을 시작으로 최신작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미술문화 펴냄·2만8000원)까지 6권의 미술책을 줄줄이 내놓으며 주목을 끌고 있다.
"고전으로 거슬러 간 이유? 저작권 때문이죠"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력이다. 김씨의 이력을 보면 사람의 운명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스스로도 예상 못했던 변신에 김씨 본인도 아직은 ‘미술평론가’라든지 또는 ‘미술사가’라는 호칭에 어색해하는 모습이다.
대학 재학중 이민을 떠난 김씨는 뉴욕에서 20년 넘게 스포츠용품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욕으로 유학온 한국 미술가들과 친해졌고, 이를 계기로 그의 인생은 갑자기 급선회를 하게 됐다. 미술이란 새로운 세계를 접한 뒤 그는 ‘일요화가’가 됐다. 92년, 그는 한 전람회에서 자기 그림을 보던 미국인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이건 잭슨 폴록 그림인가봐.” 기분이 나빠져 집에 돌아온 뒤 김씨는 도대체 폴록이 누구인지 찾아봤다. 그것이 거짓말 같은 변신의 시작이었다.
60년대 이후 현대미술계 최고의 스타였던 폴록도 몰랐던 그는 무엇엔가 홀린 듯 미술 공부에 빠져들었다. 미친듯이 책을 사고, 자료를 모으고, 그림을 보러다녔다. 공부는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다. 첫번째 책 <폴록과 친구들>이 바로 그 소산이다. 미술은 또한 아내와 그를 맺어주기도 했다. 폴록 원고를 들고 귀국해 출판사를 알아보다가 만난 출판사 미술문화의 지미정 대표와 결혼해 영구 귀국했다. 이후 남편은 글을 쓰고 아내가 책으로 펴내는 공동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김씨의 책은 일단 독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 <뒤샹과 친구들> 등 현대 미술가 책은 물론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등 이전 책 모두가 2000부 넘게 팔렸다. 고정독자가 한정된 미술책 시장 여건과, 그의 책이 한결같이 500쪽이 넘는 분량에다 비교적 고가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미술 자체보다는 작가에 대한 일화나 다분히 감상적인 작품 소감이 주를 이루는 미술책들 사이에서 이름만으로 알려졌던 주요 거장들을 철저하게 해부하는 ‘정통주의적’ 미술책을 펴낸다는 점도 돋보인다. 이번에 다룬 다비드 역시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다비드만을 따로 다루는 책은 김씨의 것이 처음이다.
김씨 책의 특징은 한 명의 작가가 아닌 짝을 이루는 2명 또는 3명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어느 작가에 대해, 특히 그 작가의 창의성을 이해하려면 한 명만을 따로 다루는 것보다는 오히려 가장 잘 대비되거나 영향관계에 있었던 다른 작가들과 함께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또한 한 작가의 일대기는 다분히 후대에 만들어지는 영웅주의로만 흐르기 쉬워 진정한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구요.” <다비드의…>에서도 나폴레옹은 비록 작가는 아니었지만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비드의 짝패로 설정해 비슷한 중요도로 다뤘다.
현대작가로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다음 책 <레오나르도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으로 이어지면서 연대순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그런데 이처럼 고전 작가로 올라가는 데에는 미술출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웃지못할 이유가 있다. 사후 5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경우 저작권 때문에 작품 도판 한 쪽을 쓰는 데 많게는 수십만원까지 내야해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책을 봐야 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중”이라고 김씨는 웃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