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미 속에서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과 미 속에서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 즉 예술 창조의 능력에 주목했다.31)
이는 대단히 중요한 관점으로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은 스승을 통해 예술을 그 총체성에서 볼 줄 알게 되었고, 트로이와 바빌론, 페르세폴리스를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하며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의 수립과도 연결시켜 역사의식을 한층 높였다.
『시학 Poietica』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념의 모방은 사물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태 및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상태를 나타낼 수 있으며, 스스로를 보편적·전형적·필연적인 사물들의 특징으로 제한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방은 우선 인간행위의 모방으로 충실한 복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의미했지만 점차 자연의 모방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시를 선천적 본능과 후천적 모방을 통해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으며,32) 사고thought를 ‘알기 theoria’, ‘하기 praxis’·‘만들기 poiesis’ 세 종류로 구분했다.33)
시를 좀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서 ‘만들기’의 한 종류를 모방으로 보고 사물들 혹은 사건들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모방론을 이원화하여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으로 시각적 외양을 모방하는 예술로 분류했으며, 시를 시구, 노래, 댄스를 통해 인간 행위를 모방하는 것으로 분류했다.34)
시를 언어와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매개체로 하는 것으로,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을 매개체로 하는 것으로 상이한 점을 지적했을 뿐 모방이란 점에서는 둘을 동일하게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예술의 기능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비극을 찬양하는 중 비극의 기능으로 ‘적합한 즐거움 oikeia hedone’을 꼽았다.
이는 시각예술에도 해당하는 기능이다. 모방을 자연적 현상으로 보았고, 모방을 인식하는 것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로 사람이 즐거움을 아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다.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회의적 태도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본 미적 즐거움을 철학자의 것과 동일한 류의 인식적인 요소에 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시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일반적으로 미에 대한 즐거움으로 시각예술에도 적용된다.
적합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아름다운kalliste 것 혹은 부분들이 순열적으로 배열된 탁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의 예술에 대한 이해였음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