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진전된 모방론
모방론을 진전시킨 사람은 플라톤의 문하에서 20년에 걸쳐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3-322/1)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모방 개념 및 모방론을 변형시켰는데 예술가의 전체적 실존이 지닌 가치를 해방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스승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 그는 이데아를 보편적 개념으로 대신했다.
그의 ‘제3인간 the third man’ 논증은 유명한데 누군가가 이데아 인간을 모방해야만 한다면 그와 모방한 이데아 인간에게는 둘의 공통된 이데아 인간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박이다.
인간이 동물인 한 그 이데아 인간은 또한 이데아 동물도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물의 수만큼 이데아 동물의 수도 많아야 할 것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개념universal concept과 개별개념individual concept을 구별하면서 “우리가 보편개념이라고 말할 때 많은 주어에 대하여 술어가 될 수 있는 것을 뜻하며, 개별개념이라고 말할 때 그러한 술어가 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는 고유명사와 명사와의 관계를 지적한 것인데 예를 들면 태양, 달, 한국, 이퇴계 등은 고유명사로 하나뿐이지만 개, 소, 인간 등은 명사로 많은 대상에 적용되는 것으로 명사는 실체가 아닌 보통 개념이며 복수를 가리키지만 고유명사는 실체로 개별 개념인 단수를 가리킴을 지적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스승의 이데아론을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이데아 세계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대상에 대한 모방으로 보지 않고 자연에 대한 모방으로 단순화시켰다.
그는 자연 속에 직접 표현된 절대미의 모방에 관해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Physica』 2권에 적었다.
“그 자체로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갖고 있는 그런 것들이 자연의 성질을 갖고 있는 (혹은 자연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정의했고 또 그 개념의 다양성을 공고히 했다.
그는 “자연이란 표현은 어떤 자연적 과정 및 그 과정의 산물 양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에게 자연이란 표현은 사물의 질료를 지칭하는 동시에 형상, 즉 사물의 본질, 자연을 이끄는 힘을 가리킨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변화하는 조건에서도 일정하게 지속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에서 사람의 본성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았으며,53) 사람은 자기가 모방한 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 또한 자연으로 보았다.
흉칙한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본성 때문이라고 했다.
모방은 사람의 자연으로 자연을 알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모방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에게 사람의 본성이란 그 사람의 본질이 되게 하는 속성이다.
본성은 육체의 목적하는 바 영혼을 향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서 발견하는 사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발견하는데 그는 사람을 정신, 영혼, 육체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다.
정신은 영혼보다 높은 단계에 속하며 육체의 구속을 덜 받는다.
『형이상학 Metaphysica』에서 그는 “정신의 경우는 다르다.
정신은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독자적인 실체인 것 같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 실체이다”54)라고 했다.
정신은 보다 높은 사유의 기능으로 육체나 감각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정신은 불멸일 수 있으나 영혼의 나머지 부분은 불멸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보았다. 공간적인 형체를 일종의 형상으로 보았는데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이를 영혼과 형체의 공통성을 일정한 양과 질료에게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 덩어리의 대리석 중 나중에 조각상이 될 부분이 아직 대리석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다.
조각가가 그 조각상을 만든 후 비로소 통일성을 갖게 되며 통일성은 그 형체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러셀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