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스텔라는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잭슨 잭슨이 죽은 것은 충격이었고 … 그는 갔으며 우리는 그를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인생은 끝났고 그는 편히 쉬고 있는데 우리는 그를 잊을 수가 없군요.


자식이 사망하고 2년이 채 안 된 1958년 4월 20일 스텔라는 아이오와 주에 있는 그레스톤 병원에서 타계했다.
병원에 기록된 사인은 다리에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였다지만 그녀의 장례식에서 폴록의 네 형들은 그녀가 음식 먹기를 거부하더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잭슨이 사망하고 어머니는 더 살기를 거부했다”고 큰 형 찰스가 말했다.

얼마 후 리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으나 폴록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집, 폴록이 곧 술에 취한 채 나타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리는 뉴욕에 아파트를 얻고 그곳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 후 리는 폴록의 화실을 그녀의 화실로 사용하면서 살다가 1984년 6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집은 지금 ‘폴록-크래스너 미술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가들은 홀연히 이 땅을 떠나지만 예술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누구에 의해 멈추지는 않는다.
생존하는 예술가들은 그들이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예술을 실천한다.
폴록이 사망하던 해 1956년 12월 19일부터 다음해 2월 3일까지 모마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으며 1967년 4월 5일부터 6월 4일에도 열렸다.
1960년대에 그는 20세기 미국회화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인정되었고 그가 떠난 후에도 해마다 그의 크고 작은 전시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홀로 위대한 예술가로 남은 폴록의 위대한 적 드 쿠닝은 세계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으면서 아직도 아흔세 살의 나이로 생존하고 있다.
그의 회고전이 1994년 워싱턴 국립 화랑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렸으며, 1995년에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렸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1997년 2월에도 뉴욕 모마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1981년부터 드 쿠닝의 나이 여든세 살인 1987년까지 그린 그림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
말년에 그린 작품들은 선, 색, 형태의 잔치를 보여주는데 그의 색조는 엷어서 사람들의 민감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며,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가의 노련한 의견처럼 보인다.
액션 페인팅을 창조한 몇몇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그의 그림에는 여전히 빠른 붓질은 남아 있지만 충동과 자극을 배제하면서 회화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유연한 자세로 생의 리듬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의 폴록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그림을 보여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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