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저승사자와 보낸 잭슨 폴록의 주말
8월 9일 루스가 폴록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주말을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보내려고 하는데 토요일 아침에 기차역으로 마중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폴록과 함께 저승으로 갈 친구를 데려오겠다니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운명인가.
다음날 폴록은 제프리 포터에게 가서 연장들을 빌려왔고, 루스가 주말에 올 것을 대비해서 맥주를 네 상자나 샀다.
세리와 로드가 폴록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왔을 때 폴록은 취해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폴록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콘라드 마카-랠리를 찾아갔다.
폴록이 밤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린 이 시적인 말이 랠리가 들은 폴록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폴록은 천성이 예술가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를 쓴 시인이었다.
인생이 아름답고, 나무들이 아름다우며, 하늘이 아름답다. 왜 나는 고작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는가?
운명의 날이 밝았다.
1956년 월 11일, 토요일 오전 아홉시에 루스는 친구 에디스 맷저와 함께 기차에서 내리면서 마중나온 폴록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폴록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고 루스가 나중에 전했다.
루스가 그에게 친구를 소개하려고 하자 폴록은 저만치 가버렸다.
루스는 폴록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 대해서 아주 실망했다고 회상했다.
루스는 집으로 곧장 가기를 바랐지만 폴록은 그들을 태우고 술집으로 갔다.
폴록은 에디스를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스물다섯 살의 예쁜 처녀로서 겁이 많은 커다란 눈에 커다란 입술,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치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독일의 유태인 가족에게서 태어나 루스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여인이었다.
집으로 오자 루스는 부엌 설겆이통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모두 씻은 후 점심식사를 준비했으며, 폴록은 진을 한 병 꺼내왔다.
식사를 마친 루스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폴록에게 바닷가로 가자고 졸랐다.
그는 그녀와 함께 뒷마당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때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수영복 차림의 루스가 요염하게 자신의 오른발을 바위 위에 앉아 있던 폴록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폴록은 그녀의 허벅지를 붙들고 있다.
폴록은 차를 몰고 몽탁 바닷가로 가는 대신에 제임스와 샤롯 브룩스를 방문했다.
샤롯은 “잭슨은 술에 취해 있었고 슬퍼 보였으며 루스에 대한 느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빨리 바닷가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재촉했다”고 말했다.
폴록이 다시 차를 몰았다.
그녀는 바닷가로 가는 줄만 알았는데 그는 곧장 집으로 와서는 루스와 에디스만 거실에 남겨두고 침대로 가서 잠이 들었다.
지쳐 있던 폴록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녁에 폴록은 스테이크를 구웠으며 진을 또 마셨고 그녀가 커피를 권했지만 입에도 대지 않았다.
루스는 주말을 즐기러 왔기 때문에 밤이 되자 폴록에게 대규모로 열리는 파티에 가자고 졸랐다.
폴록은 한 사람에게 3달러가 든다고 투덜거리면서 그린버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그린버그는 “과거에는 잭슨이 돈에 관해서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루스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세 사람은 옷을 차려입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폴록은 이미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종일 진을 마셨던 데다 지난 밤에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지쳐 있었다.
그러한 증세가 운전에서 나타났는데 그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는 갑자기 속력을 줄이는 등 자신이 차를 운전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에디스는 “루스, 잭슨이 취했어.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폴록은 도저히 운전에 자신이 없었는지 차를 길옆에 세웠다.
순찰 경찰관이 그에게 와서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폴록.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폴록이 그에게 말했다.
경찰관은 그곳을 떠났고, 로저 윌콕스가 차를 타고 오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차를 폴록의 차 옆에 세웠다.
그는 아홉 시에 시작하는 음악회에 가던 중이었다.
“헤이, 잭슨, 거기서 무엇하는 거야? 자네 음악회에 가는 거 아냐?”하고 물었다.
원래 폴록은 음악회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음, 몸이 좋지 않아서 잠시 쉬고 있어”라고 그는 힘없이 말했다.
“난 병이 난 것 같아. 기분도 안 좋구. 파티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폴록이 말했다.
윌콕스는 루스와 에디스가 그를 보더니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았다.
루스는 그때 폴록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음악회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텔레비전이나 보려고 에디스와 함께 이스트 햄프턴까지 왔던 것은 아니었다.
폴록은 다시 운전해서 술집 근처에 차를 세우더니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크릭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오소리오가 피아니스트를 사람들에게 막 소개하고 있을 때 하녀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는 “미스터 폴록이 조금 늦을 거랍니다”라는 메시지를 주인에게 전했다.
폴록이 차에 막 탔는데 에디스가 그의 차에 타지 않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난 택시를 부를 테야.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고 그녀는 루스에게 말했다.
폴록은 이 여자의 고집이 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두 여자가 말다툼하는 동안 폴록은 잠시 잠이 들었는데 잠 속에서 그는 리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