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4월 12일 kbs라디오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글입니다.
실제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브루스 노먼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베케트와의 관계이지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정리된 하나의 글로 쓴 것입니다.
세 가지 질문에 관해 준비한 간략한 답변도 함께 아래에 첨가합니다.
이 내용은 4월 12일 밤 10시 10분부터 11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주향의 문화포커스' 중 중간에 전화로 이루어지는 인터뷰입니다.


새무엘 베케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새무엘 베케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자코메티와 사르트르의 사상을 함께 살펴보는 이유는 베케트의 사상이 전후 소수 유럽 지식인들에게서 발생한 사상과 일치하며, 그런 사상이 세계대전이란 인류의 집단적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임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찍이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들 세 사람은 8-13살의 어린 나이였겠습니다만) 유럽의 지식인들은 집단적 유럽적 병든 이성에 매우 낙담하여 각성을 촉구하는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과거의 전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살상을 통해 공포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럽 지식인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일으킨 것은 당연했습니다. 집단적으로 억압당하고 부단히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자문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사색과 행동으로 시대와 상황에 맞게 자아를 형성하고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근본적인 가치관 아래 당면한 시대를 파악하고, 상황을 포착하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게 되었는데, 베케트, 자코메티, 사르트르 모두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여러 조건과 상황 속에서 행동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관례에서 벗어나 자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발성 혹은 자유를 어떻게 획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실존주의 사고가 전후 가장 유력했으며 이는 베케트, 자코메티, 사르트르의 문학, 미술, 철학의 공통된 내용입니다.

베케트를 먼저 그리고 자코메티와 사르트르의 사상을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 참고로 베케트에 비해 자코메티는 5살이 많고 사르트르는 1살이 많습니다.

새무엘 바클레이 베케트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아일랜드는 조지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등을 배출한 문학의 나라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로망스어를 배운 후 잠시 파리 고등사범학교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에 능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율리시스 Ulysses〉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 그의 서클의 일원이 되었고, 훗날 조이스에 관한 평론을 쓴 것으로 봐서 조이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41년 지하 저항단체에 가입하고 1942년 동료들이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의 정복되지 않은 지방으로 피신한 것은 사르트르와 동일한 행보였습니다. 그는 프랑스가 해방될 때까지 농업노동자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조이스 외에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 프랑스 철학자이며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르네 데카르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가 데카르트에 관한 시집을 두 권 쓴 것은 그 영향이 컸음을 의미합니다. 베케트는 1946~49년 파리에서 왕성하게 저술했는데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로 포함됩니다. 이 희곡은 1951년에 출간되었지만, 1953년 1월 파리에 있는 소극장 '테아트르 드 바빌론'에서 공연되고부터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출연, 언론 인터뷰 등을 차단했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수상식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베케트가 다룬 것은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으로 전후 유럽 지식인이 풀어야 할 당면과제였으며, 인간 경험의 본질을 분석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었습니다. 과거 세계문학에서 주로 다루어진 주제들, 즉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그들의 태도와 재산, 신분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 성적 대상들을 정복하는 것 등은 베케트에게 존재의 단순한 겉치레에 불과했고, 그것은 인간 조건의 기본 문제와 근본적 고뇌를 가리는 우연적 피상적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베케트는 인간은 누구이고, 인간의 참된 본성은 무엇이며, 인간이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왜 존재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가장 일반적인 인간상황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적으로 무의미하거나 무의미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상상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두 주인공은 나무 한 그루와 텅 빈 무대로 표현되는 쓸쓸한 세상에서 자신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실 때문임이 틀림없다고 막연히 추측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고도’라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오겠다는 약속했다거나 '고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객관적인 증거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베케트는 두 사람의 끈기 있고 소극적인 기다림을 또 다른 두 등장인물의 삶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 없고 목적 없기는 마찬가지인 여행과 대비시켰습니다.

베케트의 작품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쓰고 있다"고 말할 때 나는 자신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때 나의 일부는 다른 일부가 행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즉 나는 관찰자이자 동시에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두 모습 가운데 진정한 '나'는 어느 쪽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본 사람은 베케트가 제기하는 문제가 바로 데카르트가 이미 제기한 것으로 그때까지도 풀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포착하기 어려운 자아의 본질을 추적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꿈과 의식에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는데 관찰자이자 관찰의 대상이 되는 두 모습의 관계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로 생각 혹은 이성적 판단이 존재에 선행한다고 믿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노력 대부분이 사소하며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베케트의 견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의미하며 헛된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는 효과를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66)는 1963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장치를 설계했다. 1963년 이전의 자코메티의 작업은 상상의 공간 속에 마술처럼 현실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그의 모델들은 회색 캔버스나 조각 받침대 위에 유령처럼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작품이란 실제 공간에 현실감을 배가시킨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실재가 관람자의 지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베케트의 소설과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코메티의 인물상들은 각각의 존재 속에 공간과 시간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 목적을 현상의 재생이 아닌 현상 이면에 있는 실재 자체에 대한 불가사의한 반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상상적 공간 속에서 참된 현존의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신비로움을 환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작품의 물리적인 실재는 현상 이면의 만질 수 없는 실재를 암시하기 위해 더욱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관람자는 아주 멀리에 가물거리는 대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54년에 쓴 소논문 <자토메티의 회화>에서 “자코메티가 인물을 물질적 존재의 힘으로 우리를 감동시킬 때 과거 어느 화가도 성취하지 못한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점을 자코메티의 말년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단순히 유사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 속에서 인물의 본질과 일치하는 하나의 실재를 창조한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물질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재현이며 동시에 존재의 핵심이며 침묵이 주변 공간을 지배합니다. 그의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주인공을 연상하게 합니다. 베케트와 유사한 점은 식물의 줄기처럼 가늘고 시각적 거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그의 인물이 인간의 정신적 소외를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일시적이고 덧없는 세계 안에 갇힌 인간의 상태를 은유하는 것입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구체화되는 당대의 정신적 분위기에 가장 잘 부응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1966년에 타계했습니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의 실존이기 때문에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행동의 주체이며 선택의 주체인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이상 그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하고 그 책임은 인류에 대한 책임으로 연대의 문제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는 실존의 자유 안에서 주체적 행동적 휴머니즘을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이 행동과 노력으로 사회를 초극하고 변혁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런 사상은 베케트의 사상과 일치합니다.




베케트와 시각예술의 관계

베케트가 196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므로 그때부터 그에 대한 관심이 보편적으로 생겼습니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며>가 단연 대표적인 작품으로 많이 읽혔고 저도 읽었습니다. 1969년은 개념미술이 성행할 때라서 특히 개념미술 예술가들이 베케트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브루스 노먼과 제니 홀처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베케트가 자아 성찰의 문제를 다룬 것이 개념미술 예술가들이 다룬 예술가란 무엇인가 혹은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의 영향 혹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미술에서는 비물질화를 통해 성찰을 모색했는데 헛된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베케트와 일치하는 점입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66)
베케트보다 5살 많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63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장치를 설계했습니다. 그는 실재가 관람자의 지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베케트의 소설과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코메티의 인물상들은 각각의 존재 속에 공간과 시간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 목적을 현상의 재생이 아닌 현상 이면에 있는 실재 자체에 대한 불가사의한 반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작품의 물리적인 실재는 현상 이면의 만질 수 없는 실재를 암시하기 위해 더욱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관람자는 아주 멀리에 가물거리는 대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54년에 쓴 소논문 <자토메티의 회화>에서 “자코메티가 인물을 물질적 존재의 힘으로 우리를 감동시킬 때 과거 어느 화가도 성취하지 못한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물질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재현이고 동시에 존재의 핵심이며 침묵이 주변 공간을 지배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무대의 넓은 공간이 침묵으로 흐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케트와 유사한 점은 식물의 줄기처럼 가늘고 시각적 거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그의 인물이 인간의 정신적 소외를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일시적이고 덧없는 세계 안에 갇힌 인간의 상태를 은유하는 것입니다. 자코메티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구체화된 당대의 정신적 분위기에 가장 잘 부응한 예술가였습니다.


브루스 노먼(1941-)
브루스 노먼은 서부에서 유행한 펑크아트의 시기를 거친 후 개념미술, 특히 바디아트를 주창했습니다. 노먼의 바디아트는 표현주의나 사실주의 노선을 취하지는 않았으므로 예술가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삶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표현하는 자전적인 것이 아니라 비개성적이었습니다. 비단 노먼에 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포함한 일부 예술가들이 신체를 사용하여 행위자의 자의식과 관람자의 자의식을 다뤘는데,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관찰자가 되도록 거울과 비디오 기구를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베케트가 추구한 관찰자이자 동시에 관찰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진정한 '나'는 어느 쪽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베케트가 영향을 받은 르네 데카르트의 <성찰>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베케트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노력 대부분이 사소하며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므로 관객으로 하여금 무의미하며 헛된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고 한 것을 노먼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그가 베케트에게서 받은 영향입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발성 혹은 자유를 어떻게 획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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