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결국 나는 자유로워졌어”



리는 무척 괴로워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을 만나면 잭슨 폴록과 이혼해야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이제 그녀는 “잭슨과 이혼해주지 않겠다”며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폴록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한 리는 폴록에게 유럽으로 함께 여행가서 페기 구겐하임도 만나고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석하자고 권했으나 폴록은 거절했다.
폴록은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의사 클라인을 오래도록 못 보아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는데 실은 그는 요즘 클라인을 만나는 날짜를 늦추는 등 치료받는 것도 게을리 하고 있었다.

6월에 루스는 색 하버로 이주했는데 그곳은 스프링스에서 불과 12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이 폴록의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인 줄 몰랐다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실은 그녀는 숨어사는 것에 진력을 내고 있었고 더 이상 애인 행세를 하려 하지 않았다.
리는 이혼하려는 낌새를 보이지 않았고 폴록은 어정쩡하게 리와 자신을 모두 곁에 두려고 했으므로 그녀는 정면으로 돌파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폴록은 그녀를 에름나무 술집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 술집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때부터 폴록은 일주일에 두세 번 그녀에게 갔으며, 동네 근처 아무데서나 그녀와 동행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웃에 살던 로드에게 그녀를 소개하기도 했다.
폴록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술을 더욱 많이 마시고 있었다.
그는 의사 클라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클라인은 “당신은 어떠한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저 “왜 루스와 살지 않죠?”라고 물었다.
클라인은 동료의사들과 폴록에 관해 의논했는데 그들의 결론은 “빌어먹을 폴록의 경우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잭슨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루스가 폴록에게 결혼을 요구하면 폴록은 자신이 리에게 빚이 있다고 말하면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폴록의 의지의 문제인 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후 루스의 판단이 폴록의 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루스가 임신했다.”

폴록은 그린버그와 벤 헬러, 다른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하면서 자신은 원래 무정자가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임신할 수 있었던 거라고 좋아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폴록은 그녀의 임신이 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됨을 알게 되었다.
“잭슨은 얼마나 리를 두려워했었던지 아이가 출산될 터인데도 리와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루스가 말했다.

폴록은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두 여자를 공유하는 방법으로 루스가 집으로 들어오고 리가 뒤켠에 있는 그의 헛간 화실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를 궁리했다.
폴록은 회화에서는 천재였지만 통속 드라마 같은 인생에서는 천치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루스에게 함께 리에게 가서 그녀의 이해를 구하자고 말하면서 리가 너를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폴록에게 화를 내면서 그가 용기도 없고 의지도 약하다고 나무랐다.
추상표현주의의 간판스타 잭슨 폴록은 이렇게 루스에게는 의지가 약한 사내가 되고 리에게는 비정한 사내가 되어버렸다.

7월 어느 날 폴록은 루스를 화실로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고 깔깔거리며 밤을 보냈다.
그때 리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이 화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뒷문에 리가 가운 차림으로 서 있었다.
리는 얼굴이 하얘지도록 화가 나 있었다.
리의 얼굴은 이그러져 있었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루스를 응시하다가 “경찰을 부르기 전에 저 여자를 내 집에서 쫓아내!”하고 고함을 쳤다.

폴록이 루스를 데려다주고 돌아왔을 때 리는 “그 여자를 만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떠나마”라고 선언했다.
폴록은 리에게 “꺼져!”라고 마주 고함을 쳤다.
이러한 싸움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대개 폴록이 만취되어 집에 돌아오면 그랬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리는 폴록이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폴록과 이혼해주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한 리는 가족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유럽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려고 결심했다.

이때 리는 위궤양과 대장염을 앓고 있었다. 폴록이 리를 죽이고 있었다.
리는 숨이 막힐 것 같아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산소를 공급받는 것과 같았다. 폴록은 유럽으로 가는 배표를 사가지고 왔다.
리는 유럽으로 떠나기 전에 이혼수속을 해놓고 가야겠다며 친구들과 의논했는데 테드 드래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만류했다.
테드는 그녀에게 “넌 멀리 가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렌 시겔은 리에게 이혼보다는 먼저 별거를 해보라고 권했다.
폴록은 의사 클라인에게 상황을 알렸고, 클라인은 “리가 유럽에 가게 해라”고 조언했다.

유럽으로 떠날 날이 다가오자 리는 마음이 약해져서 폴록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애원했다.
리의 애원은 폴록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만류이기도 했는데 폴록은 리의 애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은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리는 폴록이 죽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폴록은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손은 형판들로 가려져 있었다.

리가 떠나던 날인 7월 12일 뉴먼과 그의 아내 애널리가 리를 부두까지 환송했고, 리는 르 아브르로 떠나는 퀸 엘리자베스 호에 승선했다.
뉴먼은 “잭슨이 리를 내쫓았다”고 회상했다.
리는 부두로 가는 도중에 “난 가기 싫어. 잭슨에겐 내가 필요해”하고 소리치면서 울었고, 폴록에게 전화를 걸어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도 했다.
그녀는 폴록이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하기를 기대했는데 그러한 낌새가 보이지 않자 “아, 여권이 여기에 있었군!”이라고 말한 후 수화기를 던졌다.

리는 떠났고, 화요일에 오소리오가 폴록을 데리러 맨해턴의 기차역으로 갔다.
폴록은 클라인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잭슨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는 아주 우울해 있었으며 병색이 뚜렷했고 얼굴은 붉게 얼룩져 있었다”고 오소리오가 전했다.
폴록은 오소리오에게 희미한 목소리로 “의사는 휴가중이고 리는 떠났다.
결국 나는 자유로워졌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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