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넷 뉴먼과 숭고
바넷 뉴먼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온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1905년 맨해튼에서 태어나 1922~26년에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수학했고, 1927년 뉴욕 시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그에게 2년 동안 자신과 함께 의류사업에 종사한다면 동업자로 대우해주며 10만 달러에 상당하는 주식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일푼으로 뉴욕에 와 의류공장을 경영하는 성공한 인물이었다. 뉴먼은 아버지의 사업에 참여했는데 불행하게도 1929년 10월 말에 주식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공황이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사업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뉴먼은 1937년까지 어렵게 경영을 계속했다. 1930년대에는 임시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대화하기를 즐겼고 정치학, 조류학, 지질학, 어학 등에 많은 지식이 있었다.
뉴먼은 1933년에 탁월한 행정가 라 구아르디아에 대적하여 뉴욕 시장에 출마했다. 뉴먼이 선거유세에서 언급한 공약은 진지하면서도 코믹했는데, 그의 네 가지 공약은 대중을 위한 화랑과 카페를 늘이는 것, 뉴욕 시를 위한 오페라단을 구성하는 것, 어른을 위한 놀이터를 만드는 것,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부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뉴먼은 낙선했고 라 구아르디아는 능력 있는 3선 시장으로 오늘날까지 뉴욕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뉴먼은 회화에 있어 미국의 지방주의와 사회적 사실주의뿐만 아니라 유럽의 입체주의, 구성주의, 초현실주의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은 끝났으므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신념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에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거의 모두 폐기했다. 새롭게 출발한 뉴먼은 1940년대 후반 점차 신비적 추상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을 찾아갔는데, 1948년 1월 단색조의 어두운 붉은색 화면에 밝은 오렌지색 선 하나가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합일>을 제작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성취했다. 그가 화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합일>을 발표하고부터였다. 사람들은 웃기는 그림이라고 했지만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럼은 그의 작품을 ‘낭만적 고상함’이라고 했으며, 붉은색은 ‘바다’로서 우리를 이기심의 중심으로부터 밖으로 움직여 나오게 만든다고 기술했다.(폴록 81, 107, 97, 108) 로젠브럼이 설명한 작품이 관람자에게 제공하는 미학적 경험은 동시에 지성적으로 도전하게 했는데, 예를 들면 그의 커다랗고 평편한 붉은색은 조절하는 힘이 없이 치솟는데 집zip이 그것을 억누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수직선들은 기하학적 조직으로서 관람자에게 심리적으로 작용하여 화면 전체에 안정감을 주었다.
뉴먼이 붙인 제목은 독특했는데 1950~51년에 그린 그림을 <숭고한 영웅>이라고 했고, 1960년대 초 처음 조각품을 세 점 제작한 후 제목을 <여기 I>, <여기 II>, <여기 III>이라고 했다. 이 조각은 가늘고 수직으로 긴 집zip이었다. 그가 그림에 붙인 제목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 <지금>, <존재> 등이었다. 뉴먼은 화가라기보다는 이론가였는데 1948년 12월에 에세이 <숭고한 것은 지금이다>를 발표했고, 이듬해 말에는 <새로운 미학을 위한 서설>이라는 미완성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자신은 그림을 그릴 때 “공간의 조작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감각”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때 그는 향수의 감정, 각본, 연상, 역사에 의해 부담을 느끼는 시간 그리고 통상적인 회화의 주제가 된 그런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뉴먼이 염두에 둔 시간은 과연 어떤 것이며 ‘지금 now’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뉴먼의 친구이자 미술평론가 헤스는 뉴먼의 시간을 히브리 전통에서의 그곳, 그 위치, 그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마콤 makom’ 혹은 ‘하마콤 hamakom’이며, 그래서 그것은 신성한 모세의 율법, 즉 명명될 수 없는 것에 부여하는 명칭 중 하나로 보았다. 뉴먼이 말하는 ‘지금’이란 미래와 과거 속으로 흡수되는 ‘바로 지금의 순간’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지시인의 종언>(1984)에서 뉴먼의 ‘지금’을 ‘현재 Jetzt’로 보고 시간성의 ‘무아경’ 중 하나로 아우구스티누스와 후설 이후 의식에 의해 시간을 구성하려는 사유전통으로부터 분석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뉴먼의 ‘지금’을 발생occurence으로 보았다. 의식으로 구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의식을 분해시켜 즉위해제시키는 것으로 의식이 정립할 수 없고 의식이 스스로를 구성하기 위해 잊어버려야 하는 우리가 정립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혹은 ‘단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큰 사건도 작은 사건도 아닌 단순한 ‘발생’으로 보았다. ‘무엇 quid’ 이전에 우선 일어나고 있는 ‘사태 quod’를 말한다.
뉴먼은 <숭고한 것은 지금이다>에서 미학적, 철학적 의미로서의 숭고를 사유했다. 리오타르는 뉴먼이 말하는 ‘숭고한 것은 지금이다’는 ‘지금, 이것이 숭고한 것이다’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숭고는 갑자기 다가와서 흔들어놓고 느끼게 하는 어떤 경이로운 것이다. 뉴먼의 숭고의 효과는 관람자의 시야를 압도하는 커다란 화면의 사용으로 한층 더 했는데 그는 화면 크기의 질적 중요성을 부여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의 영향을 레리 푼스와 프랭크 스텔라를 비롯하여 추상표현주의 이후에 출현한 여러 새로운 양식을 창안한 젊은 예술가들이 받았다. 그가 색을 평편하게 넓게 칠한 것은 모노크롬의 컬러필드의 선구적인 행위였고, 재스퍼 존스의 전체적인 회화 혹은 비관계적인 회화의 선구적인 모범이기도 했다.
1950년과 1951년 베티 파슨스 화랑에서 열린 뉴먼의 첫 개인전은 적대감과 몰이해만 불러일으켰으며, 그는 1952년 모마에서 열린 ‘15인의 미국인전’에도 초대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로스코, 라인하르트, 스틸 등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며 1958년 모마에서 열린 ‘새로운 미국 회화전’에 네 점을 출품했다. 이 전시회는 2년 동안 유럽을 순회했다. 1955년 초 평론가 클레먼트 그린버그는 뉴먼의 작품을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