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아트




미니멀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의 몇몇 특징과 액션 페인팅에 대한 반작용으로 195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경향을 말한다. 미니멀리즘이란 용어와 개념을 러시아계 미국 화가이며 이론가 존 그레이엄John Graham(1881~1961)이 1937년 <미술의 체계와 변증법 System and Dialectics of Art>에서 이미 사용했으며, 앞서 다비트 부를리우크는 1929년 듀덴싱 화랑에서 열린 그레이엄의 전시회 카탈로그 서문에 “미니멀리즘은 작업 수단의 최소화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 미니멀리즘 회화는 주제가 곧 회화 자체가 되는 순수하게 사실적인 것이다”라고 적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는지 또는 어디서 배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레이엄이 쓴 글에 의하면 가보, 리시츠키, 다비트 부를리우크, 시인 마야코프스키와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알고 있었고, 그의 초기 작품은 광선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후 말레비치,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당시 유행하던 신지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20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미국 시민이 되었다. 뉴욕 화단에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여 모더니즘의 대변자라는 평을 들었고 미국 미술과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연결시키는 교량적인 역할을 했다. 그레이엄은 미국에서 초현실주의의 자동주의 기법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이미 이것을 언급했으며 미니멀리즘의 논리를 예견했다. 그는 <미술의 체계와 변증법>에서 신비철학, 신비주의, 현대 미술의 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브를리우크는 미니멀리즘이 회화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면서 그레이엄을 선구자로 꼽았다.

현대 미술 운동의 동향을 설명하는 많은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미니멀 아트는 그 적용 범위가 매우 넓다. 영국 평론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는 <현대미술의 개념>(1974)에 기고한 ‘미니멀 아트’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적었다. “여기에서 논의된 모든 미술 운동 중에서 미니멀 아트는 가장 불분명하며, 가장 독립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미술을 통틀어 이보다 더 현대 미술의 전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미니멀 아트에는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단일 색채로 균일하게 채색된 캔버스처럼 미니멀 작품은 거의 차별화 되지 않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예술가의 작업량은 최소한이 된다. 둘째, 작품이 뚜렷하게 차별화 되어도 예술가의 작업량은 최소한도에 머무르는데,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생산품이 작품의 구성 요소로 사용되어 이들이 서로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미니멀 아트란 명칭은 평론가 바버라 로즈가 1965년 <아트 인 아메리카> 10, 11월호에 기고한 논문 ‘ABC 아트’에서 사용했다. 미니멀 아트 중에서도 최소한의 내적 차별성을 지닌 한 부류에만 주목한 로즈는 1950년대에 일어난 새로운 감수성으로의 전환에 대해 언급하고 “공허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비인격성을 지녀 앞서 등장한 낭만적이고 자전적인 추상표현주의 양식과 격심한 대조를 이룸으로써 관람자가 감정과 내용의 명백한 부재를 목격하고서 얼어붙도록 만드는” 미술에 대해 서술했다. 로즈는 새로운 종류의 미술이 독창성, 감상적이거나 표현적인 내용, 복잡성과 같은 전통적인 필요조건들을 의도적으로 폐기 처분했다고 지적했다. 
 

재즈 음악가이기도 한 프랑스 화가 클랭은 유럽의 네오-다다 운동의 주도자였으며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1930~)와 함께 누보 레알리즘 운동을 시작했다. 레스타니는 1960년에 누보 레알리슴 선언문을 발표했다. 클랭은 1946년에 이미 한 가지 색으로 균일하게 칠한 비대상 회화인 모노크롬을 작업했지만, 1950년에 런던에서 비공식적으로 전시되었고 1955년 살롱 데 레알리티 누벨에서는 거부당했다. 1956년 파리의 콜레트 알랑디 화랑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이 ‘클랭의 국제적인 푸른색(IKB)’이라고 부른 독특한 푸른색을 사용하여 모노크롬 회화, 조각된 형상, 캔버스 위의 스폰지 부조를 제작한 ‘푸른색 시기’를 맞이했다. 
 

1959년 소르본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클랭은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 이론은 색채에서 주관적인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색채가 갖는 개성을 없애고 색채에 형이상학적 특징을 부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설명했으며, “그리고 내가 점차적으로 빗물질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색채를 통해서였다”고 했다. 이 강연의 일부는 1973년 김펠 피스 화랑이 기획한 회고전 도록에 다시 실렸다. 클랭은 자신이 푸른색을 선호한 이유를 밝혔다.

“푸른색은 어떤 특징도 없으며, 특징이라는 한계를 초월하지만 다른 색채는 그렇지 않다. 다른 색채들은 거의 심리적인 의미로 확대 해석되는데, 열을 발산하는 것으로 미리 상정되는 붉은색을 예로 들 수 있다. 모든 색채는 심리적으로 물질적이거나 실체적인 개념을 연상시키지만, 푸른색은 바다와 하늘 정도만을 암시할 뿐이다.“ 
 

클랭은 1958년 흰색으로 칠해진 텅 빈 화랑을 보여준 <텅 빈 전시회>로 파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1952년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된 일련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고 이어서 전체적으로 검정색으로 된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찢기고 구겨진 신문이 붙어 있고 검정색 에나멜 물감으로 인해 표면이 불규칙적이고 전체가 검은 일련의 회화를 제작했다. 그는 미니멀리티를 실험한 최초의 화가 중 하나였다.

미니멀 아트라는 명칭은 기교를 감축하고 전통적인 미술의 방식을 거부하는 미술에 더 포괄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모리스 루이스는 종종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잭슨 폴록의 후기 작품에서 헬렌 프랭컨탤러로 이어진, 초벌칠 하지 않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얼룩을 만드는 기법을 루이스가 도입하면서 물감의 회화적인 사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니멀 조각가들로 토니 스미스, 칼 안드레, 로버트 모리스, 도널드 저드 등이 있다. 1933~36년 아트 스튜던츠 리그, 1937~38년에는 시카고의 뉴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한 토니 스미스Tony Smith(1912~80)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현장 감독으로 견습생활을 했으며, 1940~60년까지 건축가로 활동했다. 1940년경 조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1960년대 초에는 미니멀 아트 조각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스미스의 작품은 규모가 크고, 강철 또는 채색한 강철로 제작된 단순한 기하 형태들로 구성되었다. 그의 조각은 잘 들어맞는 모듈 단위체나 직사각형의 상자들로 구성되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은 표현성과 환영을 배제하고 미술작품을 오브제 그 자체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미니멀 아트의 미학을 동시대의 어떤 작품보다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브란쿠시 제자로 나무 조각을 시작으로 조각에 몰두한 칼 안드레Carl Andre(1935~)의 초기 작품에서 브란쿠시의 영향을 발견하기란 쉽다. 1960~64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서 일했으며, 그 경험으로 상호 교환이 가능한 규격화된 단위의 사용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66년 뉴욕의 유태 미술관에서 열린 ‘기초적 구조’ 전시회에 선보인 그의 작품 <지렛대>는 139개의 내화 벽돌을 각각 분리시켜 일렬로 배열해놓은 것이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 아트로 분류되며, 또한 그 중 일부는 시리얼 아트 및 체계적인 미술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스티로폼이나 벽돌, 시멘트 블록, 자성체 등 동일한 형태의 공업 재료들을 부착하거나 접합시키는 과정 없이 수학적인 일정한 체계에 따라 쌓아올려 작품을 제작했으며,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해체되었다. 1965년경부터 간단한 수학 원리에 따라 직각의 격자 모양으로 작품을 바닥에 수평으로 배치했다. 또한 대지 미술도 시도하여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1948~51년 캔자스시티 대학, 캔자스시티 아트 인스티튜트,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한 후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1931~) 1953~55년에 오리건 주의 리드 칼리지에서 수학하고 1966년에는 헌터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모리스는 미니멀 아트 주창자 중 가장 뛰어나며 자신의 의도를 명료하게 형상화한 예술가로 꼽힌다. 그는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구성하는 것을 거부하고 ‘비관계적 non-relational’ 혹은 ‘전체론적 holistic’인 미학을 표방했다. 1965년 뉴욕의 그린 화랑에서 기초적 구조 작품들을 전시했으며, 그후 부분과 내부 구조가 없는 기본적인 다면체와 같이 즉시 명시할 수 있는 단순한 오브제들을 발표하면서 기교를 거부하고 극도의 지적인 단순화를 추구했다.

모리스는 미니멀 아트에서 조각가이면서 이론가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단일한 형태 unitary forms’라고 명명한 기초적 구조 이론은 1966년 <아트 포럼> 2월호와 10월호에 기고한 논문 두 편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며 이 논문들은 1968년 그레고리 뱃콕이 엮은 <미니멀 아트>에 재수록되었다. 모리스가 용의주도하게 가장 쉽게 지각되고 이해되는 형태, 더욱 단순한 다면체를 사용한 것은 한편으로는 추상표현주의가 신봉하던 즉흥적이며 개성적인 표현에 대한 반발이었다. 동시에 그는 몬드리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원칙, 즉 미술작품은 부분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 통일된 체계라는 입장에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후기 작품에서는 모듈의 변화와 연속적인 반복을 점차 중시함에 따라 형태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또한 모리스는 1960년대에 칼 안드레와 함께 예술가의 작업은 작업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탈피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스튜디오나 화랑 같은 제한된 공간을 넘어 환경 속에서 미술품으로도 가능하도록 설계된 ‘현장 in situ' 조각작품 개념을 주창했다. 

미니멀 아트의 주도적인 인물이며 이론가인 도널드 저드Donald Judd(1928~94)는 1946~47년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다. 1953년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마이어 사피로의 지도를 받아 미술사학을 공부하여 1962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드는 1959~65년 <아츠 매거진>의 미술비평가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화가로 출발했는데, 나중에 저드는 이 시기의 작품을 “불완전한 추상 half-baked abstractions”이라고 불렀다. 1960년대에는 표면의 질감을 강조한 단색조의 부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3년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상자와 같은 똑같은 직사각형 형태를 벽에 설치된 사다리처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을 ‘특수한 오브제’라고 했으며, 1965년 <아츠 이어북 Arts Yearbook>에서 처음 출간한 ‘특수한 오브제’란 제목의 글에서 땅 위에 놓여진 이런 조각을 옹호했다. “실제 공간은 평편한 표면의 회화보다 본질적으로 더 강력하고 특별하다.” 처음에는 주로 나무로 작업했지만 1963~64년 뉴욕의 그린 화랑에서 열린 성공적인 전시회 이후 공업용으로 제조된 다양한 금속과 채색된 퍼스펙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 저드는 작품을 전시할 특별한 장소에 맞추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72년에는 야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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