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와당문화
유창종 지음 / 미술문화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당을 수사하라!
기와집의 지붕 끝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와당이 있다. 빗물, 눈, 바람 등으로 쉽게 손상될 수 있는 부분을 마감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지만,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해 아름답게 만들었다. 막새라고도 하는 와당은 중국 서주시대 때부터 만들어져 중국, 한국,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부자재였다.
저자는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검사로 재직할 당시, 충주 탑평리 중앙탑 부근에서 우연히 와당 파편을 주운 일을 계기로 와당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 와당편을 집었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저자는 한국의 와당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와당도 수집하고 정리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집한 와당을 기증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창종실’이 저자가 기증한 와당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2008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와당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학술적 발전을 촉진시키고자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했다.

와당, 동아시아 미술문화의 한 축
『동아시아 와당문화』는 30여 년에 걸친 와당 수집의 결산으로, 학계에서는 관심 밖이었던 와당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와당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시대별·나라별로 분류하고 그 원류에 대해 추적함으로써, 동아시아 미술이라는 전체 퍼즐의 일부 조각들을 맞추고자 했다.
중국에서도 중국와당을 서주(西周)에서 명(明), 청(淸)까지 모든 왕조와 시대를 망라하여 통사(通史)적으로 설명한 책은 아직 없다고 한다. 특히나 중국의 학자들은 진(秦), 한(漢) 이후의 와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기 때문에 수집조차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와당들이 함께 소개되는 책은 처음으로 발간되는 것이어서 한국, 중국, 일본의 와당전문가나 수장가, 미술사학자, 고고학자, 사학자에게 매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컬렉션을 공개하려는 목적으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수집을 해오면서 쌓아온 저자의 감식안, 중국과 일본의 수장가들과의 교류와 토론을 통해, 동아시아 와당 분야에서 저자의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 양주(楊州) 출토의 주연부가 높고 연주문이 있는 연화문와당에 대하여 현지 박물관이나 학자들이 당(唐)의 것으로 분류하였으나 저자는 수(隋)의 와당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밖에도 전국시대의 모정(帽釘), 육조(六朝)의 연목와(椽木瓦)와 양각 귀면문와당, 북조(北朝)의 인동문과 인면와당, 제하고성(齊河古城) 출토의 귀면문와당(鬼面紋瓦當) 등을 소개하고,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북조 와당의 종합적 편년(編年)을 시도했다.

 고구려 와당의 원류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한 고구려 와당에 대해서도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까지 일본의 학자들은 고구려의 연화문와당은 중국 북조의 영향을 받아 출현하였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조의 연화문와당과 고구려의 연화문와당은 양식적으로 큰 차이가 있고, 와당의 출현 시기 자체가 북조보다 고구려가 더 빨랐기 때문에, 오히려 남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귀면문와당도 고구려의 독창적인 해석이며, 인동문와당도 고구려가 최초로 제작한 것임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 밖에도 백제 연목와의 원류가 중국 육조의 연목와라는 사실, 고신라의 특색이라고 이해되어온 6엽의 능선(稜線) 있는 연화문와당의 원류가 역시 육조의 연화문와당이라는 사실, 통일신라의 와공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주연부(周緣部)의 장식문양은 이미 중국와당에 출현한 사실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와당의 원류를 밝히면서, 한국의 미술에 대해 좀 더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즉 한국은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게 만드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박산향로가 만들어져 백제에 전래되자, 백제에서는 중국의 것보다 크고 아름다운 금동용봉봉래산 향로를 만들었다. 중국의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 전해지자, 삼국시대의 걸작인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 와당 역시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지만,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에 오면 통일신라만의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와당을 만들기에 이른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뛰어넘는 문화로 발전시킨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중일 공통의 코드 - 와당
와당은 한중일 공통의 ‘코드’이기도 하다. 이 공통의 코드를 통해 오래전의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문화의 유사성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후기>에서 저자는 “와당이 내게 준 깨우침 중의 하나는 한·중·일 3국이 역사적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와당문화의 교류처럼 3국 중 한 나라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면 다른 나라도 그 발전의 성과를 나누어 가졌다”고 밝히고 있듯이,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문화의 교류에 관해 저자 나름의 역사관을 세우고 있다. 저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깨우침과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준” 와당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고의 틀이 커지고 삶과 역사를 재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