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창설자 플로티누스Plotinus(204~270)는 고대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이다.
그는 아주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기 바로 전부터 로마 군인들의 힘이 하늘 옾은 줄 모르고 쑥쑥 자라더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황제를 선출했으며 나중에는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를 많은 권리금을 받고 팔았다.
중이 고기맛을 안 것처럼 군인들이 돈벌이에 전념했으니 자연히 국경을 지키는 일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틈을 노린 독일군이 북쪽으로부터 공격을 가해왔으며 동쪽에서는 페르시아가 공격을 감행하면서 잃어버린 그들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고 했다.
전쟁과 흑사병이 이탈리아 인구를 삼분의 일로 줄어들게 했으며 정부는 국고를 보충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으므로 과중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달아났고 군인들은 시민들이 달아나지 않도록 감시하기에 바빴다.
이런 어지러운 시기에 위대한 철학자 플로티누스가 태어난 것이다.

플로티누스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디오클레티안Diocletian과 콘스탄티누스가 왕국을 재정비하면서 질서를 회복했는데 이런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지만 플로티투스의 글에는 시대에 관한 암울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는 선과 아름다움이 있는 영원한 세계를 사유했는데 아마 대단한 낙천주의자였거나 초현실주의자였던 것 같았다.
낙천주의자답게 그는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인들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잘 어울렸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망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희망이 있는 정신세계에만 머무르려고 했다.

그가 추구한 정신세계란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망한 후에야 즐길 수 있는 하늘나라였지만 그에게는 환상과도 같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반대되는 관념의 이데아 세계였다.
딘 인제Dean Inge는 플로티누스에 관해 언급하면서 "플라톤주의는 부분적으로 기독교 신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가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발기지 않고서는 플라톤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플로티누스 안에서 플라톤은 부활을 맞았다.

플로티누스는 중세 기독교 신학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가톨릭 신학에서 중요한 인물으로 인정받고 있다.
플로티누스가 설명한 이데아 세계는 아주 아름다운데 단테Dante가 낙원을 찬양한 것에 해당한다.
플로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가장 정련된 환상으로는 순수하게 응집된 거침없는 노래가 사파이어 색들로 아롱지는 왕좌에 앉아 있는 그분 앞에서 불려진다."

사파이어 광채가 아롱지는 왕좌 앞에서 노래하는 플로티누스에게 당시 군국주의의 부패 따위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럿셀은 플로티누스에 고나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주가 반사하는 것에 의해 수반되는 기쁨과 비탄만이 형이상학적 이론들을 산출하며, 사람은 즐거워하는 절망주의자이거나 비애스러운 희망주의자인데 플로티누스는 후자에 속한다."

비애스러운 희망주의자 플로티누스는 유물론을 배척했으며 플라톤의 이론을 아주 선명하도록 재현했고 영혼과 몸에 관한 그의 이원론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욱 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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