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씨의 전시회가 열리던 날 화가 두 분과 여기자 한 분과 함께 갔다.
전시장을 거의 않가는 편인데 세 분이 내 집을 방문해 동행하게 되었다.
소개로 윤석남 씨와 처음 인사를 나누고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앞으론 이따금 전시장을 찾아 가고 소감을 적는 버릇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진동의 어느 술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전시 소감을 묻길래 디자인이라고 대답했다.
본인은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전시장에 크게 적어놓았는데 페미니즘으로는 매우 약하다고 말했다.
미학 혹은 작품의 깊은 성찰은 없어보이고 조형적 색채가 강해서 한 마디로 디자인이라고 했다.
노골적인 페미니즘의 성격이 농후한 작품조차 페미니스트의 메세지는 전달이 되지 않고 조형성이 강하며 디자인으로 보였다.
조형성이 강하고 디자인이란 말을 내가 사용하는 데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조형성이란 시각적인 데 주안점을 두었단 뜻이다.
미술의 기본으로 균형을 말하는데 길고 짧은 것, 고저장단을 맞추는 걸 말한다.
디자인 역시 시각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에는 창작이 있다.
조형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본다.
해서 조형성에 치중하면 장식 그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다.
디자인은 동시대의 느낌이며 변형이라고 생각된다.
동시대의 느낌이기 때문에 창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시회를 갖다온 후 어느 디자이너에게 그분의 전시를 보라고 권했다.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퍽 세련된 감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련'이란 말을 썼는데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매우 세련되었다.
매끈하고 잘 빠졌다.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사색을 유도하고 정신적 자유를 느끼게 하는 점은 거의 없다.
역시 이런 작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모두 사변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럴 필요는 없다.
관람자들의 취향도 다르기 때문에 각각 자신의 장점을 발전시키면 된다.
윤석남 씨는 디자인에 치중하면서 그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윤석남의 작품은 한 마디로 디자인 디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