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로의 사의적·서예적 추상

이응로는 1976년 서울 신세계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카탈로그에 적었다.

"내가 그림을 시작한 것이 벌써 70년이 되었다. 그 지나온 70년을 되돌아보니 소년기의 자유자재했던시절을 제하고 약 10년을 주기로 하여 여섯 번으로 나뉘어 변화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20대를 우리나라 전통의 동양화와 서예적 기법을 기초로 한 모방시기라 하면, 30대를 자연물체의 사실주의적 탐구시대, 40대를 반추상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자연사실에 대한 사의적 표현, 그리고 50대에 유럽에 와서 추상화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다시 나누어 전기 10년을 ‘사의적 추상’이라 하면 후기 10년을 ‘서예적 추상’이라 이름지어 보겠다.”

그때로부터 1989년 86세로 타계할 때까지 한 차례 더 창작에 변화가 생겼으므로 모두 일곱 차례에 걸친 변화이다. 40대의 반추상에서부터 이응로의 감정 표현과 조절이 회화적 장점으로 나타났으며 오브제를 사의적으로 표현하고 자연의 기운을 역동적으로 다룬 점이 주목할 만하다. <분출>(1950)과 <산>(1954)은 자연의 기운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고 조절해 회화적 균형 혹은 구성을 창작한 것들로 장차 그릴 일련의 <문자추상>과 미학적 공통성이 있다.

그는 1958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프랑스로 향했으며 환경의 변화가 그로 하여금 창작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다. 유럽 미술의 본고장에서 종이콜라주paper collages와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종이콜라주는 조르주 브라크가 1912년 처음 발견한 방법으로 우연히 벽지를 파는 상점 앞을 지나다가 나무결처럼 생긴 벽지를 잘라 붙이면 환상의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이콜라주는 종이를 풀로 붙인다는 뜻이며 브라크는 자신과 더불어 입체주의를 창안한 피카소와 함께 이 기교를 회화에 이용해 환상적 삼차원의 효과를 한층 높였다. 앵포르멜은 미셸 타피에Michel Tapie가 1940년대와 50년대 유럽 주요 화가들의 즉흥적 완전추상화에 붙인 명칭으로 영어로는 ‘형식이 없는 without form’이란 뜻이며 비형식주의Informailsm란 말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앵포르멜은 단순히 형식을 무시한다는 의미보다는 좀더 넓은 의미로 서정적 추상lyrical abstraction을 말하며, 가벼운 붓질로 색을 칠해 불규칙한 얼룩을 남긴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 타시즘Tachisme(프랑스어 타시tache는 얼룩blotch이란 뜻이다)과 동일한 양식이다. 특정한 주제가 없이 화면 전체를 하나의 구성으로 하는 올-오버 회화all-over painting를 <분출>을 통해 실험한 적이 있고, 또한 감정 표현과 조절을 통해 서정적 반추상을 추구해온 이응로에게 당시 유행한 앵포르멜 양식은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1960년에 여러 점의 <문자추상>을 그렸으며 한동안 이 주제에 집착했다. 캔버스에 종이를 잘라 구긴 다음 풀로 붙이고 그 위에 색을 칠한 것들로 대부분의 작품에 문자를 유추할 만한 형상이 없어 제목에서 문자란 말을 빼고 추상 혹은 구상으로 불러야 타당하다. 종이콜라주가 주는 입체감과 오십 후반에 이르도록 훈련해온 채색기술 그리고 올-오버 구성이 한데 어우러져 유행에 있어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작품에 뒤지지 않았다. 종이콜라주의 부드러운 질적 장점을 십분 활용해 부조와 같은 입체감을 한껏 드러낸 완전추상 작품으로 1961~81년작 <문자추상>을 꼽을 수 있다.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이것은 <도시>(1970)와 <태양>(1972)과 관련 있으며 회화의 평면성에 갑갑함을 느끼고 좀더 자유로운 삼차원의 표현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이정표가 된다. 그는 결국 입체적 표현을 위해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세 얼굴>(1964)과 <토템>(1964)은 이그러진 얼굴 그리고 풍상에 깍여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원시적 형태를 주제로 한 것이다. 창작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며 사람은 그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상들도 나타나다가 60년대 후반부터는 군상으로 큰 무리를 이룬다. 조각의 재료로 흙과 나무를 주로 사용했는데, 서정성을 나타내기에 매우 효과적인 재료이다. 이런 재료는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물질이라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의 형상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응로의 감정 표현은 발산적이라서 다분히 서양적이지만 조절 방식은 부드러워 동양적이어서 과격하게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다.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절제하여 서정성이 떨어지고 진부한 조형에 머물고 만 작품들도 없지 않지만 일관성을 유지하며 그가 추구하려고 한 점은 젊었을 때부터 창안한 사의적·서예적 추상이며, 이는 이응로 미학의 근간을 이룬다. <문자추상>이란 제목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는데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화에서만 가능한 조형문법이며 이를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이응로 고유의 추상문법이 되게 했다. 그의 문법이란 다름 아닌 사의적·서예적 추상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문자를 구상적 인간의 형상으로 변형시켜서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를 모티프로 삼은 점이다. 이렇게 하게 된 동기로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꼽았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룬 적이 있는 그에게 민중운동은 감동을 주었고 77살의 노화가에게 마지막 창작 동기를 주었다. 그는 <군상>이란 제목으로 민중의 힘을 여러 점으로 표현했는데, 그의 역사관·정치관과 관련이 있다. 그는 1986년 동경도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을 때 말했다.

“나의 그림은 추상적 표현이었으나,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있은 뒤로 좀 사람들에게 호소되는 구상적인 요소를 그림 속에 가져왔다. 2백 호의 화면에 수천 명 군중의 움직임을 그려넣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고 이내 광주를 연상하거나 서울의 학생데모라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반핵운동으로 보았지만, 양쪽 모두 나의 심정을 잘 파악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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