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엘리트 문화


양식의 차이로서가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을 전반적으로 말하면 엘리트 문화의 일부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당시의 인문주의와 신플라톤주의를 추구한 계층으로 대체적으로 동일한 사고방식과 단일성을 지닌 지식인들이었다.
단일성으로 말하면 중세 승려계급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지식인계층을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의 대표적 미술품들을 당시 시민계급은 알지 못했으며 그들이 관람했더라도 예술가들의 고상한 미적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시민과 지식인의 지성적 차이는 매우 컸으며 이런 격차는 유럽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중세 미술 역시 시민계층을 바탕으로 한 건 아니지만 르네상스의 미술처럼 철저히 시민을 배제시킨 미술은 과거에 없었다.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1953)에서 중세 교회문화가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한 것은 교회가 로마 후기 문명과 연속적,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라틴어를 사용한 것은 지역에 따라 상이한 언어를 통해 표현된 중세 문화의 민중적 전통을 단절시키고 일종의 새로운 성직자계급으로서 자신의 문화적 독점을 확립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하우저는 예술가들이 이런 계층의 비호 하에 있었으며 정신적으로 그들의 후견 아래 있었다고 보았는데, 이는 예술가들이 교회와 길드의 권위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인문주의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권위에 종속된 것을 의미하며 이 엘리트층은 여태까지 교회와 길드가 누린 권한을 예술가들에게 행사했다.
주목할 점은 인문주의자들이 역사화와 종교화의 주제에 대한 해석에서 절대적 권위를 시위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구성과 기교에서도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인문주의자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들은 교회와 길드로부터 독립한 댓가로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고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인문주의자들을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심판자로 인정해야 했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미술품을 감상하는 계층이 비평적이며 창작에도 자신들의 역할을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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