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보통이었다


르네상스 이전 예술가들은 대부분 하찮은 신분이었으며 그들의 기술은 좀 나은 숙련공 정도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출신성분이나 교육수준에서 길드의 소시민적 구성원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농부, 이발사, 푸줏간집 자제들이 화가가 되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예술가 지망생들의 교육은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이론적 수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질적 훈련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들은 읽기, 쓰기, 셈본 등 기본 지식을 습득한 한 어린 나이에 장인의 문하에 들어가 여러 해 그 밑에서 기술을 습득했다.
르네상스 초기 중요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은 대체적으로 수공업적 조직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예술가마다 나름대로 독자적 교수법을 도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술가 지망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예술가의 작업장으로 편입되었고 유명한 예술가의 작업장에 지망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생겼다.
지망생들은 자신들의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고 예술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려고 했을 뿐 훌륭한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 초기 예술가들의 작업장은 여전히 석공조합이나 길드의 작업장이 지닌 공동체 의식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15세기 말까지 미술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집단적이었는데, 특히 커다란 조각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수와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했으므로 공장과도 같은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기베르티가 피렌체 세례당 문을 제작할 때 스무여 명의 조수가 기용된 데서도 이런 점을 알 수 있다.
기를란다요가 커다란 벽화를 그릴 때도 많은 화가와 조수들이 그를 도왔다.
처음부터 완성시킬 때까지 혼자서 작업하면서 제자와 조수들의 노동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미켈란젤로에 의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는 최초의 현대적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의 작업장은 규모에 따라 큰 사업이었다.
혼자 독자적으로 작업장을 운영할 수 없는 예술가들은 공동으로 운영하기도 했는데, 도나텔로와 미켈로조, 바르톨로메오와 알베르티넬리, 사르토와 프란치아비지오 등은 공동으로 운영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미술품 제작을 사업으로 삼고 작업장을 운영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밀라노의 에반젤리스타 다 프레디스는 예술가들을 고용해 자신이 주문받은 작품을 제작하게 했으며 레오나르도도 그로부터 일감을 받아 제작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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