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이야기


프랑스 작가 스탕달Stendhal은 피렌체를 가리켜 "중세의 런던 London of the Middle Ages"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상업이 발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1343년 피렌체 인구는 9만 1천 5백 명이었고 레오나르도가 1470년 그곳으로 갔을 때는 15만 명이 넘었다.
인구의 약 사분의 일은 산업노동자들이었다.
13세기에는 텍스타일이 발달하여 200여 개의 공장에서 3만 명의 남자와 여자가 일했다.

피렌체에는 부호들이 많았으며 막강한 제력을 가진 가문으로 바르디Bardi, 페루지Peruzzi, 스트로지Strozzi, 피티Pitti, 그리고 메디치Medici를 꼽을 수 있었다.
피렌체의 어느 가문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에게 136만 5천 플로린florins(3천 412만 5천 달러에 해당함)을 빌려줬다가 왕이 돈을 갚지 못하자 1345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플로린은 피렌체의 동전으로 앞면에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백합꽃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피렌체의 수호 성인 성 요한이 새겨져 있었다.
플로린은 피렌체가 자랑하는 화폐로 매우 안정된 통화수단이었다.
피렌체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명실공히 유럽의 재정적 수도였다.
유럽 통화에 대한 외환환율이 피렌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물을 운송하는 데 대한 보험이 페렌체에서는 일찍이 1300년부터 생겼고 영국에서 이 제도가 생긴 건 1543년에 와서였다.
1200년대 후반에 이미 피렌체와 베네치아 그리고 제노바에서는 복식부기를 사용했다.
1345년 피렌체 정부는 양도가 가능한 채권을 5%의 이자로 발행했다.
1400년의 피렌체 정부의 국고는 엘리자베스 여왕 전성기의 영국 국고보다 많았다.

피렌체는 길드의 도시이기도 했는데, 7개의 대길드arti maggiori(greater guilds)와 14개의 소길드arti minori(minor trades)가 있었다.
Arti란 말은 arts 혹은 trades란 뜻이다.
7개의 대길드는 의복제조, 모직제조, 실크제품제조, 모피제조, 금융, 의사와 약사, 그리고 상인 판사 공증인들의 길드였으며, 14개의 소길드는 옷감, 양말, 푸줏간, 제과, 포도주, 청량음료, 마구, 병기, 대장업, 열쇄제작, 목공업, 투숙업, 벽돌과 돌깍기, 그리고 혼용길드로 여기에는 오일, 돼지고지, 로프제작이 포함된다.
21개의 길드 아래에 72개의 유니온이 있었고 투표권이 없는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유니온 아래에는 막노동을 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모두 빈곤층이었다.
이들 아래에는 노예들이 있었다.
7개의 대길드에 소속된 사람들이 정치력을 행사했으며 이들은 포폴로 그라소popolo grasso(살찐 혹은 잘 먹는 사람들)로 대시민들이었고 나머지는 포폴로 미누토popolo minuto로 소시민들이었다.

피렌체를 부호들이 통치했으며 길드의 장관prior이란 기관을 통해 권력을 행사했다.
이 기관은 공화국의 모든 정치기구와 행정기구를 총망라한 하나의 통치기구였다.
이 기관이 형식상으로 길드를 대표하는 기관이었던 만큼 피렌체는 길드의 도시였다.
투표권은 어느 길드에라도 소속된 사람에게만 주어졌으며 공민권은 공적으로 인정된 길드의 소속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다.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공민이랄 수 없었다.
길드의 지배권은 7개의 대길드를 통해 연합세력을 이룬 자본가적 시민계급의 독재에 맡겨졌다.

주목할 만한 점은 피렌체의 경제적 대립관계는 대부분의 독일 도시에서처럼 길드와 체계화되지 못한 도시의 시민계급 사이에서가 아니라 직종이 상이한 길드 상호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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