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미켈란젤로


회화와 조각 그리고 드로잉에서 르네상스를 대표할 만한 미켈란젤로는 뒤늦게 시인으로도 알려졌다.
예술 전반에 걸친 그의 사고는 여러 가지 출처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쓴 편지 495편이 1623년에 발견되었고 대부분 가족이나 후원자에게 보낸 개인적인 내용이거나 작업에 관한 것들로 예술론을 알아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만, 그가 쓴 시들은 예술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거의 없더라도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이므로 미에 대한 사고를 추론하게 해준다.

미켈란젤로 자신이 직접 쓴 글 외에도 세 명의 당대인이 그에 관해 써놓은 자료가 남아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프란시스코 데 홀란다(1517~84)라는 포르투칼 화가로서 1538년 로마로 와서 미켈란젤로 주변에서 한동안 지낸 인물이다.
그는 1548년에 <고대 회화에 관한 대화편>을 썼는데 이것이 출간된 것은 1890~6년이며 영어로 번역된 것은 1928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미켈란젤로라는 대가와 밀착되어 있었다는 점을 은근히 나타내어 자기 자신을 영광되게 하기 위해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저서는 자만심의 결과물이지만 미켈란젤로의 생애 중 전기작가들이 소흘히 다룬 시기에 관련된 것이므로 소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당대에 출간된 두 번째 저술로는 바사리가 <미술가 열전>에 기록한 미켈란젤로의 전기이다.
이것은 1550년에 첫 풀간되었으며, 1568년 개정판에서는 거의 다시 썼다 싶을 정도로 수정 증보되었다.
이 책은 자료 제공면에서는 기대에 훨씬 못미치지만 미켈란젤로의 제작방법을 기술해놓고 있으며 아울러 그의 견해를 약간이나마 수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아스카니오 콘디비가 쓴 <미켈란젤로의 전기>는 1553년에 출간되었으며 셋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다룬 이 책은 바사리가 잘못해놓은 점들을 바로잡기 위해 씌여진 듯하다.
콘디비는 다소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한 말과 사고를 기록하는 데 있어 바사리나 홀란다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울브리안 마르세즈에서 태어난 그는 1540년대 말부터 미켈란젤로의 조수로 활동했다.
콘디비가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출간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78살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조상, 출생, 그리고 어린 시절에 관한 콘디비의 전기는 당시의 기록과 늙은 미켈란젤로의 어렴풋한 기억에 근거했을 것이다.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