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베노이스 마돈나>
남색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중지된 지 몇 달 후 1477년 대가 베로키오가 조수들을 이끌고 피렌체에서 약 40km 떨어진 피스토이아로 왔다.
그는 추기경 니콜로 포르테구에리를 기념하는 대리석 조각을 제작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가 피스토이아에까지 오게 된 기회를 이용해서 지방 집정부는 그에게 제단화 <동정녀와 아이 Virgin and Child>를 의뢰했다.
레오나르도도 이 팀에 가세했는데 아마 불미스러운 사건이 종결되자 잠시 피렌체를 떠나고 싶어서 베로키오 팀에 가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얼마나 그곳에 머물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래 머문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작업에 참여한 것은 작업장에서 조그만 부분을 그린 것이 전부이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테라코타 모델이 레오나르도가 한 것으로 천사가 그리스도와 동정녀에게 문안드리는 장면이다.
이것은 그가 베로키오의 작업에 기여한 마지막 작품이다.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은 것은 1478년 1월 1일로 그가 25살 때였다.
그는 서면으로 시그노리아(시위원회)로부터 성 베르나르드 예배당에 제단화를 그릴 것을 주문받았다.
그는 3월 16일 선불로 25플로린을 받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이 작품에 대한 계약을 파기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피에로 폴라이우올로가 주문한 것인데, 레오나르도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기를란다요에게 주문했고 그도 약속을 지키지 않자 필리포 리피의 몫이 되었으며 그가 7년 후에 완성했다.
1478년 12월 피렌체에는 홍수와 전염병의 재앙이 내려졌다.
레오나르도는 무슨 일이고 해야 했으며 그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는 두 점의 동정녀 마리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형식의 그림인지 또 누구를 위해 그렸는지에 관해서는 적지 않았다.
두 점 가운데 하나는 <베노이스 마돈나 Benois Madonna>인 것 같다.
당시의 전통은 대가가 역사와 전통을 좇아 그리게 되고 차세대 화가들은 대가의 작품을 보거나 의도를 파악하거나 책을 통해서 혹은 여행을 통해서 알고 역사와 범주 내에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그런 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돈나가 아기 예수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화가가 과거에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보통 어머니가 아기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음악가가 타르타리의 아스트라칸에서 이 작품을 러시아인 사포지니코브에게 팔았는데 그가 어디서 이것을 구해 러시아인에게 팔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을 사포지니코브의 손녀딸이 유증받았다.
그녀는 러시아 화가 레온 베노이스Leon Benois의 미망인이었고 그녀는 1914년에 세인트 페테르스부르그의 헤르미타지Hermitage 뮤지엄에 기증했다.
이 작품은 베노이스의 이름을 따서 <베노이스 마돈나>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것은 캔버스로 재현되었지만 레오나르도는 패널에 그렸다.
캔버스로 재현된 것은 아무래도 원화와는 같을 수 없는 데다 서툰 솜씨로 보수되어 원화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지게 되었다.
마돈나의 앞이마는 벗겨졌고 볼은 볼록하고 눈은 침침하며 목은 주름져 있다.
이빨은 색에 덮여 보이지 않고 피부도 보수하는 과정에서 매끈하지 않아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원화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레오나르도가 도상적 전통을 무시하고 그렸기 때문이다.
과거 마돈나의 그림은 그녀를 숭고한 모습으로 표현하느라 딱딱하고 몸을 꼿꼿하게 세운 모습으로 마치 사진을 찍을 때 긴장하고 몸을 유연하게 하지 않고 얼어붙은 것처럼 포즈를 취하는 것과 같았다.
후기 15세기 화가들도 그런 식으로 그렸기 때문에 레오나르도의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신비한 신성을 단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하면서 일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아기 예수는 꽃에 매료되어 잡으려고 한다.
마돈나는 아기가 꽃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어머니와 아기 모두 관람자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두고 놀이를 하고 있다.
15세기 관람자들이 과연 이 작품을 만족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수석 조수가 된 로렌초 디 크레디로부터 라파엘로까지 레오나르도의 마돈나는 새로운 이미지로 전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