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1449~94)는 발도비네티Alesso Baldovinetti(1426년경~99)와 베로키오로부터 수학한 것 같다.
아버지는 금세공가였고 기를란다요란 이름은 금과 은으로 화관을 만든 데서 유래했다.
기를란다요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금세공을 배웠다.
그는 마사초가 카르미네에서 프레스코화를 그릴 때 몇 시간 동안이나 바라보았다고 한다.
바사리에 의하면 "기를란다요는 상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언뜻 보고서도 모두를 아주 닮게 그릴 수 있었다"고 했다.
상 지미냐노에 있는 대성당의 산타 피나 예배당에 성녀 피나의 생애를 그렸을 때 그의 나이 불과 21살 때였다.
그는 1480년 31살 때 피렌체의 오니상티 교회와 수도원 식당에 4점의 프레스코화를 그린 후 대가로 불리었는데 그것들은 <성 제롬 St. Jerome>, <십자가에서 내림 Descent From the Cross>, <마돈나 델라 미세리코르디아 Madonna della Misericordia>,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에게 감동을 주었다.

기를란다요의 양식은 딱딱하며 단조롭고 동시대 화가 보티첼리에 비하면 더욱 더 유행에 뒤졌다.
그렇지만 장인적 기교에 뛰어났으며 사업에 능통해 피렌체에 훌륭한 작업장을 갖고 있었다.
그의 동생들 베네데토Benedetto(1458~97)와 다비드Davide(1452~1525)가 조수로 그를 도았다.
그는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가서 시스티나 예배당에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는 그리스도 Christ Calling Peter and Abdrew from Their Nets>를 그렸는데, 배경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고대의 도시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는 오래된 아크, 목욕탕, 기둥, 수도교aqueduct, 원형경기장 등을 드로잉하는 훈련을 스스로 했으며 언뜻 보고서도 재현해낼 수 있는 탁원한 재능을 가진 그는 자와 콤파스 없이도 대상을 정확한 비례로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에서 알게 된 로마의 메디치 은행 은행장 조반니 토르나부오니는 1485년 기를란다요에게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예배당에 <동정녀와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 Scenes from the Lives of the Virgin and St. John the Baptist> 시리즈를 그리면 1200두카트(3만 달러)를 주겠다며 마음에 들 경우 200두카트를 더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이것을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고 1490년 예배당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토르나부오니는 자신의 마음에 꼭 든다면서 그러나 자신이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어 200두카트를 더 주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라고 말하자 기를란다요는 후원자가 흡족해 하는 것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흡족해 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장을 모든 예술가들에게 열어놓고 누구든지 와서 일하게 했다.
그는 크고 작은 작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문을 받아 조수들과 함께 작업했다.
제단화도 많이 그렸으며 그가 그린 초상화도 적지 않다.
그의 아들 리돌포Ridolfo(1483~1561)는 라파엘로의 친구이며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