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 출여하여 유명작품 도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알려진 도난 미술품은 14만 5천여 점에 이르고 해마다 1만 점이 도난당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난당한 작품을 보면 피카소의 작품이 287점으로 가장 많고, 미로의 작품이 243점 샤갈의 작품이 210점이며 이것들의 가격은 27억 파운드에 달하고 알려지지 않은 도난 미술품을 합친다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예술의 귀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을 수 있습니다. 피카소에게도 그런 욕심이 있었는데, 소개하지요.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지면을 통해 널리 홍보한 사람은 피카소의 친구이자 유명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입니다.
아폴리네르는 가정교사, 은행 서기, 언론인, 사진사의 일을 하다가 시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피카소를 만난 건 1903년이었고 곧 피카소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1907년 벨기에인 게리 피에르란 사람을 비서로 채용했는데, 피에르는 훔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였습니다.
하루는 피에르가 루브르 뮤지엄에 가서 돌로 된 작은 조각 두 점을 코트 안에 넣어 훔쳐왔습니다.
피카소의 일대기를 쓴 작가 존 리처드슨에 의하면 피카소는 루브르 뮤지엄에 새로 전시된 기원전 5, 6세기경의 고대 이베리아인의 돌조각에 대단한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피에르가 훔쳐온 이베리안인 조각 두 점을 보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피에르에게 돈을 주고 두 점을 샀습니다.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얼굴이 이베리아인의 조각과 닮아서 그 얼굴들이 피에르가 훔쳐온 돌조각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습니다.

피에르는 미국으로 가서 4년 동안 지내다가 1911년 봄에 파리로 돌아왔는데 돈 씀씀이가 헤펐으며 경마에 많은 돈을 탕진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폴리네르는 피에르에게 돈을 꾸어줬고 잠자리도 제공하는 등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피에르는 아폴리네르에게 진 빚을 갚을 겸 돈이 필요해서 8월에 다시 루브르 뮤지엄으로 가서 이베리안인의 돌조각을 훔쳐왔습니다.
피에르가 아폴리네르의 주문을 받고 훔쳤는지 아니면 피에르가 그의 의중을 파악하고 훔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에르는 그것을 아폴리네르에게 주었습니다.

그 날 공교롭게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고 신문이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친 범인은 루브르에 고용된 빈센조 페루지아였습니다.
그는 <모나리자>의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서 그 그림을 벽에서 떼어 계단으로 가져간 후 그곳에서 캔버스를 액자로부터 분리한 후 둘둘 말아 코트 안에 넣고 유유히 루브르를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페루지아는 2년 후 <모나리자>를 구입할 사람을 찾다가 50만 리라에 구입하겠다는 플로렌스인의 제의를 받았고 그때 쇠고랑을 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나리자>는 조금도 상한 데가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피카소와 연관이 있는 1911년 8월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하면,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사실이 보도된 후 <파리 저널>은 그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에게는 신분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거액을 보상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피에르는 꾀가 나서 아폴리네르의 아파트에 있는 이베리아인 조각을 가져다 <파리 저널>에 건네주고 돈을 받은 후 루브르 뮤지엄의 안전상태가 매우 허술하다고 충고해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는 불안했습니다.
전에 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에르로부터 이베리아인 조각 두 점을 구입한 일이 불안했던 것입니다.
아폴리네르는 과거의 비행이 탄로날 것을 염려하여 피에르에게 160프랑을 주면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이유로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아폴리네르는 조각 두 점을 가방에 넣고 센 강에 던지려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그 방법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그것들을 <파리 저널>로 가지고 가서 자신의 신분을 보장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경찰에 신고했는지 9월 7일 경찰관이 아폴리네르의 아파트를 뒤졌고 아파트에서 피에르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경찰관은 아폴리네르를 체포한 후 그가 <모나리자>를 훔친 자와 공모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상테 구치소에 수감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구치소에 엿새 동안 구치소에 감금되었는데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경찰관은 피카소를 의심하고 심문하기 위해 연행했습니다.
심문관은 아폴리네르를 피카소가 있는 방으로 데려온 후 아폴리네르를 아느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겁에 질린 피카소는 창백한 얼굴로 평생 수치스럽게 여길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난 이 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훔친 조각품인 줄 알면서도 구입한 피카소는 법에 따라 스페인으로 추방되어야 마땅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폴리네르는 풀려났지만 그때부터 피카소를 비겁한 놈으로 여겼습니다.
두 사람의 미학적 우정은 그대 깨지고 말았습니다.
피카소가 서른 살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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