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악마적 이미지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발견된다
선량공 필리프Philip the Handsome(1478~1506)가 1504년 보스에게 <최후의 심판>을 주문했고
필리프의 장모이자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 1세Isabella I(1451~1504)가 보스의 작품을 세 점 소장했으므로
보스의 작품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실 사이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와 스페인 왕실이 통합되자 많은 스페인인들이 플랑드르로 왔으며 상당수가 그의 작품을 수집했다.
나소의 헨드리크 3세Hendrik III의 세 번째 부인 멘시아 데 멘도자Mencia de Mendoza는 남편이 타계한 후 1538년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보스의 작품 몇 점을 갖고 갔다.
보스의 걸작 <지상 쾌락의 동산>은 헨드리크 후손 빌렘이 소장했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여러 작품이 알바 공작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몰수되었으며 결국 펠리페 2세의 손에 들어갔다.
보스의 작품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최초의 풍경화가로 알려진 요아힘 파티니르에게 영향을 주었다.
플랑드르 화가 파티니르는 인물을 동반한 풍경화를 그렸고 1515년에는 안트베르펜 화가들의 길드 일원이 되었다.
그는 1521년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urer(1471~1528)를 만났으며
뒤러는 은 메탈 포인트를 사용하여 파티니르의 초상을 그리면서 그를 ‘뛰어난 풍경화가’로 기록했다.
일상적인 인물과 장면 그리고 상징주의에 의한 보스의 교훈적 양식은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플랑드르 화가들이 특히 보스의 악마적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음은 많은 그들의 드로잉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영향은 오늘날에도 발견된다.
회화양식에 대한 보스의 관심은 또한 궁정과 교회 미술에 우위를 점한 이탈리아 화가들의 영향에 대한 반동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브뢰겔을 포함하여 많은 화가들이 보스의 양식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깊은 종교적 교훈과 자성을 촉구하는 요소는 사라지고 단순히 관람자에게 즐거운 경악을 환기시키는 기묘한 형태들을 즐겨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는데,
예를 들면 저주받은 영혼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중세의 지옥에 대한 보스의 묘사는 후기 화가들에 의해 악마에 의해 흥이 연출되는 디즈니 랜드식 놀이공원이 되었다.
악마들이 목적 없이 등장하고 성인을 유혹하는 매춘부를 지나치게 관능적으로 묘사한 데서
보스의 의도보다는 기법만을 받아들였음을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