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뢰겔의 보스풍 판화


브뢰겔이 1556년에 드로잉한 것을 코크가 이듬해 발간한 판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다 Big Fish Eat Little Fish>를 보면
코크가 브뢰겔에게 보스풍의 판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드로잉 오른편 손가락으로 큰 물고기를 가리키는 사람의 모습과 상단 왼편의 바위 위의 구조물은 보스의 요소임을 이내 알 수 있다.
현존하지 않지만 보스의 작품을 보고 모사한 것이 분명해보이는데,
피테르 반 데르 헤이덴Pieter van der Heyden이 엔그레이빙으로 제작한 판화 하단 왼편에 보스가 디자인한 것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에는 브뢰겔의 서명이 있지만 판화에서는 브뢰겔의 서명 대신 보스가 디자인했다고 적혀 있다.
이는 코크의 의도로 보인다.
브뢰겔의 이름이 판화에서 의도적으로 빠진 예는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emptation of Saint Anthony>에서도 발견된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다> 하단 오른편에 코크가 1557년에 발간했다고 적혀 있다.
아래에 대문자로 GRANDIBVS EXIGVI SVNT PISCES PISCIBVS ESCA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 필기체로 Siet sone dit hebbe ick zeer langhe gheweten/ dat die groote vissen de cleyne eten이라고 적혀 있는데,
대문자는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의 밥이다’라는 뜻이고,
필기체는 ‘자 아들아, 내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바는 큰 물고기가 작은 것을 먹는다는 것이란다’라는 뜻이다.


뭍으로 끌어올려진 큰 물고기 입 밖으로 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은 사람이 대단히 큰 칼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니 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뱃속에서 또한 쏟아져 나온다.
뒤로 두 다리가 달린 물고기가 입에 작은 물고기를 물고 걸어간다.
화면 앞 보트에는 아버지가 이 장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들더러 보라고 말한다.
하단에 필기체로 ‘자 아들아, 내가 오랫동안 아는 바는 큰 물고기가 작은 것을 먹는다는 것이란다’라고 적혀 있어 두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물고기의 등을 보면 브뢰겔이 다양한 펜놀림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브뢰겔의 현존하는 드로잉은 모두 61점에 불과하고 6점은 원작은 사라진 채 모사품으로만 전해온다.
그가 몇 점을 드로잉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드로잉은 16세기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 화가들에게 기본적인 행위였다.
화가로서 훈련을 받을 때 그리고 화가로 활동할 때도 드로잉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였다.
브뢰겔은 초크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화가들은 주로 펜, 초크, 수채, 색종이를 사용했으며 다른 화가들의 판화, 드로잉, 그림을 모사하는 건 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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