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시
직물생산지로 유명한 스헤르토겐보스에는 오르간과 종 제조업자들도 많았으며
무기제조업자도 있었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인구의 90퍼센트가 들에서 일했다.
스헤르토겐보스에는 브뤼셀이나 말린에서와 같은 호화스러운 궁정도 없었고
루뱅에서와 같은 대학도 없었으며
브라반트의 주요 도시들과는 달리 주교의 관할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명한 라틴어 학교가 하나 있었고
15세기 말에는 문예협회인 수사학회rederijker kamers가 다섯 개나 있어 각종 공공집회에서 시낭송회와 연극이 공연되었다.
스헤르토겐보스에는 인문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네덜란드의 유명한 인문학자이자 신학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9?~1536)가 열일곱 살 때 이곳으로 와서 1485년부터 1487년까지 3년 동안 라틴 학교에서 수학했다.
에라스무스는 훗날 이 도시에서 몇몇 작가들에 관해 공부했음을 시인했으며 이 시기의 공부가 그 자신의 독특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며 공부했다고 주장했지만
스헤르토겐보스에서 사본과 인쇄한 책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읽는 가운데 학업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보스는 이미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에라스무스가 보스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그가 보스의 작품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는 예술에 관한 일반론적인 언급을 수차례 한 적은 있지만 보스의 작품에 관해 남긴 기록은 없다.
그의 저서가 처음 스헤르토겐보스에 소개되었을 때는 보스가 타계한 후였다.
대학자 에라스무스는 말했다.
"어리석고, 음란하거나 자극적인 그림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 밖으로 버려져야 만한다!
Foolish, obscene or Provocative paintings ought to be taken not only out of the churches, but out of every city!"
그의 저서는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가 회화에 관해 강한 어조로 한 말은 스헤르토겐보스에서 수학할 때 본 그림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으로 짐작된다.
스헤르토겐보스에 출판사가 처음 생긴 건 1484년이었으며 그 해 책이 출간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책을 출간된 건 1473년 플랑드르의 알스트Aalst에서였으므로
스헤르토겐보스에 일찍 이 기술이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이 도시에는 몇 개의 출판사와 책 제본업자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