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진양,

오랜만이에요.

인생 여정에 이정표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기도 하지만,
주어지는 이정표가 자신이 원해야 했던 이정표일 때도 있어요.
인생은 그야말로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는데
늘 내면의 투쟁으로 얼룩지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 적힌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서 크게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여사제가 "네가 가장 현명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스승을 찾아 이리저리 다녔답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요.

이 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스스로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지각생이라서 델포이 신전에 적힌 말이 무척 실감이 납니다.
그리스 신전에 적힌 이 말은
아마도 공자님이 말씀하신
나이 오십에 이르는 지천명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십의 불혹을 넘어서야 이르게 되는 경지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스스로를 아는 것과 지천명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지요.
이십대에도 삼십대에도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 소수에게만 가능할 것 같군요.
여하튼
스스로의 재능 혹은 능력 혹은 잠재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고난 재능이 스스로에게 있는가 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단 말이지요.
숨겨진 재능 혹은 발굴되지 않은 재능을 덮어두고 남이 원하는 혹은 사회가 원하는 일에 뛰어들 경우
소위 말하는 적성에 맞지 않아 고생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각생이 되더라도 스스로에게 용납되는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인생에 노력과 잔신감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다고 봅니다.
모쪼록 진진양의 재능 혹은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노력과 자신감으로 정진하세요.

두 번째 스스로보다 현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지각하는 일인데,
이건 아무래도 인생의 경륜을 쌓은 후에야 깨닫게 되는 신의 마지막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소크라테스님도 나이가 들어서 철이 났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이걸 일찍 깨닫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Yes and No입니다.
아무리 일러도 지천명의 나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하튼
신이 주는 이 마지막 선물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델포이 신전의 여사제가 소크라테스에게 혹은 우리에게 주는 신탁의 교훈은 매우 값집니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유아독존과 같은 의미일 것 같습니다.


진진양이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니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나의 경험으로
미술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분야로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날 뿐만 아니라
창작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과 꿈을 심어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창작의 세계에는 늘 내가 설 곳이 있어 나의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혹자는 미쳐야 학문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예술은 학문이 아니지만 미술사는 학문입니다.
모쪼록 미친 상태에서 미술사에 정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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